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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위대한 개츠비 - F.스콧 피츠제럴드

by 김반장


오해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금수를 놓은 듯 화려한 파티장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본 순간, 데이지를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 줄거리를 들은 순간, 신파적인 느낌이 똬악 왔었다.

이것은 미국식 통속극이려니. 잘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열렬히 사랑해서 돈도 벌고 집착하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런 시시한 소설이려니. 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미루고 미뤘다.

얇고 재밌는 책은 빨리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 책은 언젠간 읽게 될 것이니까.

곧 죽어도 영원히 미루기만 할 것 같은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한 동안 폭풍처럼 몰아친 글쓰기에 뇌에 이끼가 낀 듯 뻐근해지고 나서야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

책을 펼치고

닉 캐러웨이의 자조섞인 자기 고백을 지나

짧막하지만 소설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츠비에 대한 묘사를 지나

롱아일랜드의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를 묘사하는 지점에서 부터 벌써 '요것이 내가 생각했던 소설은 아니겠구나'하는 짧은 긴장감이 뒷 목 땀구멍에서 삐질 흘러 나왔다.

첫인상과는 달리 인물과 사건을 따라 미묘한 변화를 긁어내듯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었다.


[이야기의 시작, 동부에서 서부로 돌아온 닉 캐러웨이]


책의 화자 닉 캐러웨이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허나 그것은 은밀한 고백을 하려는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고, 그는 그의 유보적 태도에 혹 처럼 달려있던 스스로의 관대함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그들의 은밀한 고백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닉은 동부에서 서부로 다시 돌아왔을 때 '세계가 제복을 입고, 말하자면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영원히 취하고 있기를(p10)'바랐다. 그 중 동부에서 만났던 개츠비만이 그에게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는 그가 대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삶의 가능성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로, 그 감수성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과 유일무이한 '낭만적 민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p11)


독자들은 아마 여기서 부터 이미 개츠비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동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서부의 부유한 집안에서 살아온 닉은 증권중개사가 되기 위해 동부 웨스트 에그로 오게 되고 자신의 친구 뷰 캐넌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는다. 뷰 캐넌은 닉의 먼 친척 뻘되는 여동생 데이지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뷰 캐넌과 데이지의 집은 이스트 에그에서 조지 왕조 식민지 시대풍의 저택*에 살았는데 그들은 프랑스든 어디든 부를 과시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데이지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 구글에 Hopetoun House를 검색하면 조지 왕조 양식 저택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음성은 마치 다시는 연주되지 못할 음정의 배열인 양 그 높낮이에 따라 귀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짝이는 두 눈과 정열적으로 빛나는 입 등으로 인해 슬프고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에는 그녀를 사랑해 본 남자라면 좀처럼 잊기 힘든 어떤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즉 노래하는 듯한 충동, "자, 들어봐요."하는 속삭임. 방금 즐겁고 신나는 일을 했으며 다음에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 생길 거라는 약속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p21)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부부에게는 비밀스럽지 않은 비밀이 있었으니, 뷰 캐넌에게 또 다른 정부가 있다는 것이었다. 저녁식사의 평화를 깨뜨리는 정부의 전화에 데이지의 신나는 음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숨겨두었던 끔찍한 마음을 털어놓았고 닉은 그렇게 데이지의 영혼이 고백하는 은밀한 넋두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 이상 억지로 내 주의를 끌려고 하거나 신뢰를 얻으려 하지 않고 뚝 끊기는 순간, 나는 그가 한 말이 근본적으로 진실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마치 오늘 저녁 시간 전부가 내게서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을 이끌어내려는 일종의 속임수였던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p33)


웨스트 에그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닉은 언짢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데이지가 해야 할 일은 당장 어린애를 안고 그 집을 뛰쳐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데이지는 허위로 꾸민 연극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을 벗어 나려는 마음이 도무지 없어 보였다. 그 날 닉은 자신의 집 옆의 대저택에 사는 개츠비가 혼자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추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p38)'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나는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가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나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짜기는,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p38)


[개츠비의 비밀] 개츠비가 보고 있는 것은 데이지의 저택 아래 선착장 불빛이었다. 날마다 초대된 손님들과 초대되지 않은 방문객들에게 성대한 파티를 열어 주는 웨스트 에그의 개츠비는, 보다 더 부유하고 원래 부유했던 이스트 에그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옥스포드 대학교를 나왔고 부유한 집에서 상속받은 재산으로 사업을 키웠다고 말했지만 그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파티가 끝날 무렵 개츠비네 뒷 문 밖에 피라미드처럼 쌓이는 오렌지와 레몬 껍질 처럼 무성했다. 개츠비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던 닉은 개츠비가 파티에 초대하면서 그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개츠비의 비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

개츠비는 5년 전 데이지와 연인 사이였다. 데이지는 그때도 서부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자였고 가난한 개츠비는 자신을 부자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어 그녀를 차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뒤늦게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미국 정부에 의해 개츠비는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옥스포드는 그 당시 개츠비가 잠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개츠비의 말처럼 옥스포드 대학교를 다녔던 것 같지는 않다. 이처럼 개츠비는 마치 리플리증후군 환자처럼 약간의 거짓말로 상대방을 완전하게 오인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개츠비는 전쟁에서 돌아왔으나 데이지는 이미 부유하고 건강한 남자 뷰 캐넌과 결혼한 후였다. 그는 데이지를 다시 차지하고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려는 열망 하나로 온갖 범법 행위로 큰 돈을 벌고,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웨스트 에그에 대저택을 사고, 매일 파티를 벌인다.


[그는 왜 데이지를 사랑했나]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순수한 이상향'이었다. 개츠비는 어린 시절 가난했던 농부의 아들 제임스 개츠로 살았다. 그가 제이 개츠비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17살에 우연히 백만잔자 댄 코디의 요트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어떤 '이상'이 있었다. 그것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니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은 데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만났던 그 어떤 여자와도 달랐다. 그는 사치 속에 은처럼 고귀하게 보호받고 있는 데이지를 사랑했다. 그는 그녀를 잃고 나서도 낭만을 추억으로 접어두려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모든 선택들은 이상적인 낭만을 하나씩 재현해 냈다. 약국을 사들여 법망을 피해 밀주업을 하는 일이라던지 성대한 파티를 열어 자신이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 뒷처리를 하는 일 같은 구차한 선택들까지도 데이지를 향한 계단처럼 성실하게 밟아 나갔다. 데이지와의 완벽한 만남을 위해 저택을 사들이고 매일 성대한 파티를 열고 데이지 주변인을 수소문 하여 닉 캐러웨이의 집에서 우연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가장하기 까지 개츠비는 모든 단계에 정성을 들였다. 그는 데이지의 사랑을 열렬히 구걸했지만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아름답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품위를 지킬 줄 아는 남자였다.

개츠비가 자신 안의 '이상'과 사랑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아닌가 하다가도, 나르시시스트들은 타인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때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것을 해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뷰 캐넌을 예로 들자면, 그는 자신의 외도가 데이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닉 까지 끌어들여 정부와 파티를 벌이고 그 안에서 짐승같은 자유를 누린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면 해치기 까지 해서 자유를 지킨다. 그녀가 자신을 화나게 하면 폭력을 행사해 피를 흘리게 하고, 나중에는 그녀가 차에 치여 죽은 것을 봐도 냉정하게 그 죄를 개츠비에게 뒤집어 씌운다. 정부의 남편에게 개츠비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는 데이지와 아이를 데리고 유유히 이사를 떠나는데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친한 친구였던 닉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나르시시스트의 사랑이다. 그는 그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 사실은 보잘것 없는 알몸덩어리에 돈이 주는 안락함을 구석구석 쳐바르고 건강과 여유와 자유를 타인에게 과시한다. 그의 행동은 오로지 돈의 냄새가 타인의 코를 찌를 때만 품위있다. 돈의 냄새가 사라진 그의 몸뚱아리를 마주하는 타인에게 그는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다.



[무엇이 개츠비를 죽게 만들었나]

화폐가 세계의 질서를 정립한 곳에서 뷰캐넌의 실체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뷰 캐넌의 정부인 머틀은 '재의 골짜기'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는 정비공 윌슨의 아내이다. '재의 골짜기'는 '웨스트 에그와 뉴욕시의 중간쯤에는 황량한 지역을 피하기 위해 차도와 철로가 만나 4분의 1마일 정도 나란히 달리는 곳'으로 '재가 밀처럼 자라 산마루와 언덕과 기괴한 정원을 이루는 환상적인 농장'이다. '재의 골짜기'에는 생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을 신처럼 굽어보는 거대한 눈이 있다. 높이가 1야드에 달하는 T.J 에크벌그 의사의 푸른 두 눈이다. 그것은 한 때 돈을 벌고 싶었던 의사가 설치했지만 잊혀진 광고판이었다. 정비공 윌슨은 아내가 죽고난 후 창 밖의 T.J 에크벌그 의사의 두 눈을 바라보며 되뇌인다. '당신은 날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못 속여!' 가난에 병든 그에게 신은 자본주의가 버리고 간 상업광고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돈의 찌꺼기였다.

찌꺼기만 남아 있는 신을 섬겼던 그는 뷰 캐넌이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는 뷰 캐넌이 타던 차를 중고차로 사들여 비싼 값에 팔 생각에 뷰 캐넌에게 구걸한다. 뷰 캐넌의 한 마디에 불행하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한다. 그가 불안에 몸을 떨며 눈이 멀어 있는 동안 뷰 캐넌은 당당하게 정비소로 들어가 머틀과 친밀한 인사를 나누고 그녀와 약속을 잡은 후 유유히 떠난다. 머틀은 자신이 윌슨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뷰 캐넌 처럼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밀회를 즐기는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는 뷰 캐넌에게 업혀 귀족의 세계로 날아가기를 꿈꾸는 머틀의 '이상'이자, 위선 속에서 피흘리며 날뛰던 욕망을 풀어 놓을 뷰캐넌의 '쾌락'이었다. 그들은 동상이몽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쫓으며 불안한 행복을 즐겼다.


개츠비의 열망은 순수했다. 자기 자신 안의 이상을 사랑했고 그 이상 속의 데이지의 존재에 몸을 던져 사랑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주기 위해 자신이룬 모든 것을 파괴하기를 마지 않았다. 머틀이 죽고 개츠비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닉 캐러웨이의 경고에도 떠나지 않았고, 그녀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 쓸 의지가 있었으며, 그녀가 어쩌기로 마음먹지 않았기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데이지는 변덕스러운 신이었다.


개츠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형씨,"
"데이지는 목소리에 조심성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그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저 높은 곳에 임금님의 따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p171)


개츠비는 죽었고, 개츠비를 죽인 자도 죽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썩은 내 나는 비밀을 지킬 수 있었던 데이지와 뷰 캐넌은 멀리 떠났다. 개츠비의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의 호의를 받았던 사람들도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도 모두 오지 않았다. 오직 개츠비의 아버지와 닉만이 개츠비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리고 석 달 전 파티가 한창일 때 홀로 개츠비의 서재에 앉아 '꽂혀있던 장서가 완벽한 진짜'라며 놀라워했던 올빼미 눈 모양의 사람이 뒤늦게 묘지에 찾아왔다. 그는 개츠비의 장례식장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놈 같으니라고." 아마 시끄럽고 화려한 파티 속에서 스스로 개츠비의 서재에 들어왔던 올빼미 눈과 닉만이 개츠비의 '진짜'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진짜'는 그렇게 공허한 풍요 속에 몸을 숨기고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다릴 뿐이었다.


악수를 나눈 뒤 나는 걸어 나왔다. 울타리에 다다르기 직전에 나는 무슨 생각이 나서 돌아섰다.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말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하는 행동에 찬성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그에게 한 유일한 칭찬이었다. (p217)



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긴다.

[개츠비는 왜 위대할까?]


신념 전쟁에 지쳐버린 세계는 지금 혼란의 시기를 거쳐 無로 향하고 있다. 무엇이 '이상'적인 것인지 고민하던 기계화된 도덕관을 지나 그 어느것도 옳지 않다는 허무주의 '데카당스'를 지나 뭐든지 깨부수는 세기말을 지나 이제는 뭐든지 버리고, 없애고, 단촐한 세계를 그리워한다. 어느 것이 더 신과 가까운 경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도 이처럼 열렬히 '이상'을 사랑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들도 대부분 잡히지 않는 '순수'와 '이상'을 쫓아 방황하다 타락하여 방종에 빠져들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소설은 절대 그 '이상'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점이 바로 문학과 철학의 다른 점이고, 어떤 면에서는 훌륭한 문학의 기준이기도 하다. '이상'이 무엇인지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이상'을 그려내고 그것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문학,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도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그런 문학이 독자의 가슴에 깊이 남는 문학인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영화를 너무 사랑하여 매일 그 영화를 보고 대사도 모조리 외우고 있다. 술을 마시다가 3번 쯤은 '변호인'의 대사를 읊어야 하고, 그 중 한 번쯤은 꼭 나도 장단을 맞춰 줘야 한다. 그의 가슴에는 내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낭만'이 있는데, 그 '낭만'에 열의를 불태우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낭만'은 요즘 유행하는 '덕후'랑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덕후'를 소유광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들에 집착하고 강박적으로 소유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깨뜨려 버리면 분노하고야 만다. 그렇기에 상품성에 어울리지 않게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아이돌에게 비난 폭격을 퍼붓는 것이며, 때로는 애니매이션 캐릭터처럼 영혼 없는 죽은 것을 사랑하기도 하는 것이다. '낭만'은 소유하지 않고도 그 감성을 재현하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능력인 것 같다.


이처럼 가슴 속에 '낭만'을 품고 사는 현대인들이 몇이나 될까. 자신만의 '이상'에 몸을 던져 앞뒤 재지 않고 사랑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인간들이 짜 놓은 규범과 관습과 규칙의 그물망을 찢어버리고서라도 누군가를, 혹은 어떤 '이상'을 사랑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때 '이상'은 우리를 가두는 신념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기준도 되지 않는 관용과 유연함 속의 '이상'이다. 닉도 끊임 없이 말하지 않는가. 개츠비는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은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미워하던 것들까지도 사랑하게 만드는 '이상'이 개츠비의 '낭만'이다. 그의 낭만은 돈을 필요로 했지만 돈에 굴하지는 않았다. 그의 낭만은 자신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데이지를 지켰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개츠비는 수많은 거짓 속에서도 '진짜'인 장서를 가득 꽂아둔 서재를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개츠비는, 정말,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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