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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Nov 30. 2019

죽기 직전 회개하는 살인자를 용서해야 할까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시몬 비젠탈


바로 얼마 전에 용서에 대한 글을 적었다.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10년 전에 봤던 영화를 더듬어 기억하며 나름대로의 고찰을 정리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이 책을 발견했다. 용서와 화해에 대한 책을 몇 권 보기는 했지만 다 읽기도 전에 흥미를 잃고 덮어 버렸던 적이 많아서 이 책을 사야할까 고민이 됐다.  책은 '해바라기'의 개정판으로 '해바라기'를 중고로 구입하면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싸게 사서 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용서'에 관한 53명의 의견이 고루 담겨 있다는 것에 매료되어 결국은 개정판을 사버렸다. 읽지도 않은 책이 몇 백권이나 굴러다니는 우리집에 새로이 입주한 장식품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렇다고 무려 5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용서'에 대해 논하는 그런 다양성이 한 책에 녹아 있는 특별함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 책 전반부는 폴란드의 집단 수용소 수용자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를 삶을 살아갔던 작가의 경험담이 소설형식으로 적혀있다.  수용소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고된 노동에 동원되어 근근히 목숨을 부지하다가 발이라도 삐끗하면 사형장으로 걸어들어 가야 했고, 그들의 목숨값만큼 저렴한 취급을 받았던  인간성은 매일 나치스 친위대에게 짓밟히고 걷어 차여야 했다. 작가 시몬 비젠탈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단 둘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수용소에서의 어느 날 시몬 비젠탈은 자신이 다녔던 학교, 이제는 전쟁 부상자를 돌보는 병원이 되어버린 곳에 노동 지원을 나가게 된다. 수용자들이 줄지어 가는 길 작가의 관점에서 보는 행인들의 시선, 유대인 사정은 자신과 상관 없다는 무관심함과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멸 그리고 동정하지만 자신도 함께 경멸당할까봐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불편함의 시선들을 느낀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보통 그런 시선을 느낀 경험이 없을 것이고, 그런 잔인한 시선을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종종 무시할 수 있는 안온한 환경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과는 보다 먼 시간과 거리에서 유대인들을 혐오했던 유럽인들을 마음 편히 비난하고 강렬한 정의감을 내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 폴란드인의 일부분이 유대인들을 차별해왔고 대부분은 그 차별에 묵인하거나 동조했다는 사실은 정의를 향한 그 강렬한 열정에 왠지 모를 이물감을 느끼게 한다. 유대인으로서 폴란드에서 사는 저자가 보는 세상은 이랬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2년 전에는 작가의 학교에서 20퍼센트 남짓한 과격분자들이 '유대인 없는 날'을 지정하여 유대인 학생들을 집단 폭행하였고 학교와 경찰은 이를 묵인하였으며 설사 그 행동으로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의인으로 칭송받았을 뿐더러 그 외의 대부분은 관심이 없거나 의지가 박약했다. 세상은 20퍼센트의 단순한 확신과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만 있으면 그들의 색깔대로 변하는 곳이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총리로 당선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까지 단순하고 신념이 강한 히틀러 소년단으로 키워낸 소수의 광분자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들은 침묵했고, 굴복했고, 나중에는 동참했다. 현대 사회에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다른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위근우 작가님 말처럼 각자의 마음 속에 혐오를 괄호 안에 숨겨온 채로 약자들의 삶의 방식에 얼마나 잔인한 시선과 말을 던져왔을까? 얼마나 많은 악의에 동참했을까? 그 악의는 '익명성'과 동일성에 기해 이룬 '집단'의 힘으로 포장되어 아직은 그것이 혐오라는 사실에 직면하지 않았을 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홀로코스트의 불씨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의 이물감이 15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의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하게 한다.


길을 걸으며 작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인간성의 상징으로서의 해바라기를 발견한다. 전쟁에서 죽은 독일군의 묘지에는 묘마다 그들의 영웅적 행위를 기리며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었다. 작가는 그 죽은 후에도 해바라기 한 그루를 가질 수 있는 독일군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문득 나는 죽은 군인들이 부러워졌다. 그들 모두는 이 세상과 연결되는 해바라기를 한 그루씩 갖고 있었으며, 나비가 그들의 무덤을 찾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해바라기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그저 다른 시체들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에 던져질 뿐이었다. 내가 누운 어둠 속에 햇빛을 가져다줄 해바라기도 없을 뿐더러, 내가 파묻힌 무시무시한 무덤 위에는 나비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것이었다.  (p35)


작가는 예전에는 학교였던 임시 병원에 도착했고, 동료들과 쓰레기들을 잔뜩 담아 병원 밖으로 나르는 일을 시작한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간호사 한 명이 다가오고, 그에게 "유대인이죠?"라고 묻고는 그에게 따라오라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그녀를 따라가던 작가는 병원 내에 독일인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 불안감을 느끼지만 혼자 작업장으로 돌아가 버리지는 못한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예전에 학장실이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죽어가는 환자를 내버려두는 병실로 쓰고 있었다. 학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코, 입, 귀를 제외하고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독일군이 보였다. 간호사는 밖으로 나가 망을 봤고, 이제 병실에는 지금 당장 죽임을 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유대인과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자신이 죽어가는 독일군만이 남아 있다. 독일군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고백했지만 비젠탈은 별 감흥이 없었다. 수용소에서는 굳이 사형시키지 않아도 하루 평균 6명의 사람들이 의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나갔다. 지금 당장 자신이 죽어도 서류 상 숫자 말고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을 텐데 그에게 죽음에 관한 절망을 인식시키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독일군은 비젠찰의 당혹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의 이름은 카를. SS라 칭하는 나치스 친위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나 부모의 반대에도 스스로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했고 전쟁이 터지자 SS에 자원 입대 했다. SS들에게 러시아군은 참혹한 시체로 죽어있더라도 침을 뱉어 경멸을 표해야 마땅한 존재였고, 유대인은 그저 제거되어야 할 그들의 불행의 근원일 뿐이었다.


그 외에 제가 유대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확성기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우리에게 배급되는 선전물에 실린 내용뿐이었습니다. 유대인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려 하고, 이 전쟁을 비롯해서 가난과 기아와 실업의 주범이라고 말입니다..... (p72)


그는 유대인 집단 그 자체로만 유대인을 배웠다. 그들의 인격이나 개인성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카를은 명령을 받았다. 150명에서 200명 정도 되는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라는 명령이었다. 독일군은 이를 '최종 해결책'이라고 불렀다. 이런 시덥지 않은 말장난으로 그들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신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인간적 차원에서는 도덕적으로 합리화시켰다. 카를과 SS들은 그들을 건물에 몰아넣고 석유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유대인들에게 직접 석유통을 위층까지 운반하게 했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욕설과 채찍질로 응징했다. 그때 더 많은 유대인을 실어 온 트럭이 도착했고, 그들은 그 유대인들을 모두 건물에 빽빽하게 밀어 넣었다. 문을 잠그고 건물 밖에는 기관총을 설치하고는 불을 질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울부짖으며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기관총이 발사됐다. 카를은 창문에서 아이의 눈을 손으로 덮어주고는 함께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아버지와 그를 뒤따라 뛰어내리는 어머니를 봤다. 그들의 몸에도 기관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여지없이 구멍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명령으로 죽은 유대인은 300여명.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아군 30명에 대한 복수로 실시된 학살이었다. 그때의 폭격과 유대인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독일군들은 그저 죽임 당한 아군에 대한 화풀이용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카를은 그 날 이후 건물에서 뛰어내리던 가족들을 잊을 수 없었고,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을 들고 망설이는 카를 옆에서 폭탄이 터졌고, 그는 눈이 멀고 얼굴과 상반신이 누더기 처럼 찢어지게 되었다.


"아시겠지요." 그가 어렵사리 을 이었다. "그 유대인들은 금방 죽었기 때문에 저만큼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저만큼 죄가 많지도 않았을 테고." (p91)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고, 죽기 전에 죄를 자백하고 고해하고 싶었다. 그는 마음 편히 죽고 싶었다. 카를이 말을 마치고,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비젠탈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끝까지 들었고 듣고 나서는 침묵의 시간 동안 마음을 정하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카를은 그 다음날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의 고백과 비젠탈이 했던 선택은 이제 비젠탈의 과제로 남았다. 비젠탈은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다 SS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사형장으로 보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비젠탈은 마음 속의 고통을 지울 수 없었다. 유대인 동료들은 그가 용서 했으면 그를 증오했을 것이라거나 카를이 죽인 유대인만이 카를을 용서할 권리가 있을 뿐이라는 것, 일단은 비젠탈이 살아남아야 그 고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카톨릭 신앙이 깊었던 폴란드인 수용자는 카를은 진심으로 참회를 했고, 그가 범죄를 보상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으므로 카를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용서를 해줬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은 끝났고, 비젠탈은 살아남았으나 카를의 문제는 그의 마음 속에 각인이라도 새겨 놓은 듯 했다. 비젠탈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해 집요하게 전범들을 추적하여  1100여명의 나치 전범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악'을 정의하고 '용서'를 고민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치 전범의 대부분은 진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자신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했다. 비젠탈이 고민하는 것은 자신이 용서할 권리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기에, 이들까지도 용서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논의에서 제외됐다. 비젠탈의 논리는 합리적이다. 악의를 방관하는 것도 악랄한 행동이라는 것과 자신에게 행한 죄가 아니라면 자신이 용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내심으로는 반대했지만 이웃의 눈초리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동조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그 '이웃' 또한 마찬가지 핑계를 댔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이런 두려움을 하나로 엮어 놓자, 그 결과 끔찍한 불신이 쌓이게 되었던 것이다. (p147)
나는 분명 마음이 따뜻한 인간이며, 좋은 어머니이며, 좋은 아내였을 그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향해 종종 동정을 표시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녀에겐 가족의 행복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가치였다. 그저 자기의 작은 보금자리가 평화롭고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수백만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을 일종의 발판으로 삼아, 나치 범죄자들은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었다. (p148)


소설의 마지막에 비젠탈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에 대해 53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제 2부 심포지엄에서는 용서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환경, 종교, 경험에 따라 '용서'에 대한 시각이 나뉘었다. 크게 나뉘자면 유대인들은 모두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기독교나 불교는 '용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은 합리적인 논거가 많아 글이 긴 편이었고, '용서해야 한다'는 입장의 글들은 대부분 원론적이고 짧았다. 그저 용서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에 용서해야 한다는 정도의 논리였다.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는 카를이 죽어갈 때에도 마음 편이 죽고 싶은 이기심에 비젠탈을 이용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었다. 비젠탈이 카를과 단 둘이 있는 것을 누군가가 문제 삼았다면 총살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를이 자신이 고해할 대상이 '유대인'이기만 하다면 아무 '유대인'이나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비젠탈을 인간성을 갖춘 인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집단적 상징체로 보는, 학살이 시작되었던 그 관점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니면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피해자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살인'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라는 종교적인 이유, 카를이 고백한 죄가 그의 유일한 죄는 아니었을 거라는 냉철한 판단, 카를이 죄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다른 SS대원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거나 참회를 설파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현실적인 '피해 회복'에 대한 노력 없이 비젠탈에게 용서의 짐을 지게 했다는 의견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런 무결해 보이는 논리에도 비젠탈의 마음 속에 카를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그 원론적이고 단순한 '용서하라'는 명제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궁극의 방향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여 영혼의 자유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 가고자 하는 길이기에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용서에 대한 확신보다는, 목에 걸린 복숭아 씨앗처럼 콱 막혀서 말을 가로막는, 신중함을 요구하는 조심스러움으로 "내가 비젠탈이었다면 용서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어느 것도 정답일 수 없고 부자연스러우며 다른 이에게는 절대로 강제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내가 용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는 타인에게 "용서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도덕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나치 전범들을 용서하라며 탄원하고 용서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세계의 종교인과 철학자, 살면서 누구에게 뺨 한 번도 맞아본 적 없을 법한 그들의 목소리가 그토록 공허한 이유이다.


책을 읽으며 가혹한 역사적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자신들의 지위를 찾고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조금은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전쟁은 끝났고, 유대인들은 승자가 되었고, 그들의 언어와 지식과 교육의 힘은 그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약자들은? 아직도 약자인 자들은? 죽음으로 소멸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본 강제 징용을 당했던 마지막 생존자와 유일하게 남은 위안부 할머니가 떠나고 난 뒤 그들의 이야기는? 배운 것이 없고, 소수의 언어에 갇혀 아직 쉰 목소리로 침울한 신음만을 내는 사람들은? 용서가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인 사람들도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땅에 억울한 영혼들은 그저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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