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은 큰 지지 기반을 갖거나 목소리가 크고 선동적인 유명 인사들과 엮이곤 했다..(중략)... 이런 유명인들이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면 그들을 페메니스트 왕좌에 올려놓고 떠받들고 칭송하다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바로 무대에서 끌어내리며 페미니스트 리더들이 우리를 실망시켰으므로 페미니즘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페미니즘과 '전문가적 페미니스트 Professional Feminists'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p13)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p15)
페미니즘이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 (p17)
우리는 살면서 크건 작건 수많은 부당함을 목격하면서 생각한다. 끔찍해.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싸움을 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는 침묵을 지킨다. 침묵이 더 쉽기 때문이다.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라틴어로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나를 향한 이런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 (p168)
내가 진짜 놀란 건, 정말 불편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의 쇼를 보고 있던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딱 한 명만 일어나서 확신을 갖고 "이제 그만해요."라고 말했다는 것 말이다. (p170)
대학원 다닐 때 복도를 걸어가다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연구실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그 친구는 내가 엿듣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동기들에게 내가 소수 집단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덕분에 들어온 학생이라고 말했다. 나는 쿵쿵 뛰는 심장을 붙잡고 일단 내 연구실로 들어왔다. 학교 복도에서 눈물이나 훔치는 그런 여자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연구실 문을 닫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내가 여기에 속할 만큼 충분히 똑똑하지 않고 세상 사람 모두가 그걸 알게 된다는 것.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여자아이와 어쩌면 다른 학생들까지도 나를 그렇게 본다는 사실은 씻기 힘든 상처가 되었다.....(중략)...
대신 어떤 핑계도 대지 않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세 배로 늘렸다. 대체로 항상 톱클래스를 유지했다. 물론 시간은 부족했으나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다. 졸업 시험 준비를 철저히 했고 논문 계획서를 쓰고 통과했다. 내 글을 출판했다. 논문을 위해 야심찬 리서치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생각만 해도 죽고 싶게 만드는 기획이었다. 무엇을 하건 어딜 가나 그 여자애 말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내가 해낸 것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도 해내지 않은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내가 우리 과에 들어올 실력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동기생들은 나를 옹호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 또한 내 마음을 후벼팠다. (p277-278)
체면의 정치(respectability politics)란 흑인이(혹은 소수 인종이)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주류 사회 문화를 모방하기만 한다면 인종 편견에 시달리는 일이 적어질 것이란 개념이다. 그러나 체면의 정치는 제도상의 인종 차별주의, 즉 현대의 교육 제도, 복지 제도, 사법 제도가 흑인 사회의 문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