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다른 게 아니라 틀린겁니다'
만약 그동안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력을 쌓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어떤 반동으로서의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없던 여혐이 생겨난 게 아니라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이러한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날 때 그동안 선량한 남성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던 이들이 얼마나 구조적이고 습속적으로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키워왔는지 드러나며 비로소 우리는 빙산의 밑 부분을 이루는 거대한 불의를 목격할 수 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겁니다, 26p)
무지 자체는 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지가 무언가에 대해 몰라도 되는 입장에서 유래한다면 이는 권력의 문제이며, 이 권력이 뿌리 기은 구조적 불평등 위에서 작동한다면 윤리의 문제가 된다. (45p)
말로 그런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발언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민감함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근거로 누군가를 문자 그대로 침묵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권력이란 점이다. (50p)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 성별·피부색·성적 지향 등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인간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엄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한 줌의 도덕이다. 페미니즘마다의 각론과 실천의 방식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는 것은 문명인으로서의 전제 조건이다. (18p)
이 속임수는 정치적 올바름을 폭력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기만적이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만연한 폭력이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보다는 결여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286p)
칼로리 섭취가 과도하면 위험하다. 이 말을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게 의미가 있는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면 위험하다. 이 말을 독재 국가에 사는 이들에게 들려 주는게 도움이 될까. 의미론적으로 옳은 말이라 해도 각각의 화용론적인 맥락 안에선 쓸모없거나 더 나아가 자칫 잘못된 구조를 용인해주는 말이 될 수 있다...... 공적 발화란 언제나 의미론이 아닌 화용론의 영역에 있다. (288p)
좋은 말만 해선 변하지 않는 세상은 모른 척하고 여성들의 과격함만을 문제 삼았다. (45p)
동성애를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을 공적인 경험 영역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위의 발언은 결국 누군가의 목소리를 공적 차원에서 지우면서 삶의 방식은 인정하자는 기만일 뿐이다. (38p)
성소수자 반대자는 결과적으로 성소수자를 권리 부재의 상태로 규정한다. 그들은 성소수자가 성소수자임을 공적 차원에서 밝히지 말라는 요구를 한다....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조건이다. (191p)
그들이 버티는 건, 단순히 본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주장하는 게 옳은 것이 될 수 있던 시대를 살아와서다.(79p)
"모든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언제나 지배 계급의 사상에 지나지 않았다”<공상단 선언> 「광고를 비롯한 대중문화 텍스트가 말하는 보편은 남성 입장에서의 보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87p)
여성에 대한 남성의 외모 평가는 단순히 예쁘지 않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평가 행위 그 자체로서 권력을 행사한다.(90p)
남성 페미니스트란 자신이 속한 남성 중심적 사회에 스민 여성혐오적 관점과 편견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반성하며, 자신에 대한 여성들의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든 의도와 상관없이 성 불평등 구조 안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잊지 않는 그 모든 실천으로서만 존재한다. (44p)
시민들에게 도덕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초월적인 용기가 아니라 옳은 발언을 할 때 너무 큰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함께 구성해 가는 것이다.(70p)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만큼의 권력을 지닌 이들이 불의에 대해 침묵할수록 불의의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의 발언엔 더 많은 용기와 부담이 요구된다.(71p)
통념의 관성, 그 물리적 힘 앞에서 프로불편러의 민감함이란 소수의견으로 쉽게 무시되거나 배제된다.나의 민감함이 관념적 독백이 되지 않기 위해선 상대에게 ‘인식’되는 것이 우선이다. 하여 공적 논의 안에서 비판적 글은 일종의 거슬림을 통해 물질적 존재감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 안온한 통념의 세상에 이물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언어. 무시하자니 뾰족해서 신경쓰이고 부수자니 생각보단 단단한 그런 언어로. (141p)
상식이 유의미한 사회적 구속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상식과 몰상식의 합의된 기준을 마련할 합리적 공론장과 그 렇게 구분된 몰상식을 공론장에서 몰아낼 실질적 힘이 필요하다. (1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