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장 Oct 30. 2019

마음에 힘이 있다는 것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요즘 부쩍 잃어버린 것만 생각이 난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어학연수라도 다녀왔으면 좋았을 것을,

제사도 없고 명절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렸을 때 조금만 더 용기를 가지고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나와 비슷하지만 나보다는 조금 더 명랑한 사람들을 보며 지금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이 나에게 의미 없이 해로운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안다는 것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 발자국 나오기도 대단한 도전인 마냥 힘들어지는 요즘,

건조함에도 취약하고 낮은 온도에는 더더욱 취약한 나의 골골 체질이 마음까지 잡아 먹어버린 것 같다.


이럴 때는 괜히 심통이 난다.


얼마 전 남편과 나는 빵이 먹고 싶었다. 나는 먹고 싶은 빵이 정해져 있었지만 남편은 한사코 친구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빵을 사야한다고 말했다. 결국은 이왕 먹는 빵이면 친구에게 도움이 되어야 더 좋은 일이라는 남편의 말에 설득되었고, '빵이 빵이지'하면서 적당히 마음 속으로 타협했다. 빵은 맛있었다. 그러나 타협에 완전한 만족은 없었다. 난 아직도 빵이 고프다.


나는 뒤끝작렬하며 그 날 내가 지키지 못한 노릇한 마늘빵을 떠올렸고, 심통부릴 요량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항상 당신의 욕망을 타인의 욕망에 맞추는 것 같아."


남편은 당연히 갸우뚱 하며 나를 봤다.


"아니, 당신 생일 때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게 아니라 굳이 조카가 가고싶어 하는 곳에 데려가고 싶어 하고, 뭐 하든 당신은 남 생각만 하잖아."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 남편은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 처럼 여긴다. 자신이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편이 나에게도 헌신적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이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두 발 벗고 나설때, 나는 내가 좋든 싫든 (두 발은 못 벗어도) 한 발로 목발을 짚고서라도 남편의 호의에 동참해야 했다.


남편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그게 내가 좋은 일인 걸. 그리고.."


속이 타서 한 마디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남편이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이번에는 내가 갸우뚱 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원하면 캠핑을 떠날 수 있고, 당일치기로 제주도도 갔다올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어. 내 마음에는 그럴 힘이 있어. 그래서 남도 도울 수 있어."


남편의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우리가 캠핑을 떠나길 원해도 먹고 살려면 오늘 해야 할 일을 내팽겨칠 수는 없다. 우리가 제주도를 가길 원해도 그 날 비행기가 떠야 하고 우리에게 당일 비행기표 값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마음이 생겨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남편 말대로, 마음만 먹으면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하루 정도는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있고, 이번 달 생활비를 아낀다는 생각으로 비행기 값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하려던 말을 잊었다.

괜히 뿔난 마음도 잊고 남편이 말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의 힘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잠겼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사비나는 한 평생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찾아다니는 여자다. 그녀는 인간의 삶에서 의미부여하는 모든 것, 즉 사상, 전체주의, 행진과 같은 것들을 '키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인간이 부여한 모든 그럴듯한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다.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 젠틀하고 사려깊은 아버지의 이미지, 이런 것들도 모두 '키치'인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홀연히 떠나는 선택을 한다. 그 남자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다 한들 사비나는 '결혼생활'이라는 '키치'에 공감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것이 가장 평화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키치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 때 드러나는 개인의 고립과 억압은 '키치'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사비나는 '키치'에 부정당한 자신의 개별성을 견딜 마음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차라리 그리움과 외로움을 선택한다.

그녀는 일평생 '키치'로부터 벗어나 가벼움을 지키려 병적으로 애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우리가 사비나를 한없이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이유는 '키치'로부터 도망이라고는 하지만, 그것 또한 '가벼움이라는 이미지'에 구속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이미지를 찾아 헤맬 뿐,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구속으로 부터 도망가는 것은 구속되어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혼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도 결혼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타인이 나의 자유를 제한할까봐 타인을 피하는 것도 타인에게 구속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즉 자신을 구속하는 현실로부터 도망간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유란, 병적인 집착도 아니고, 절대적인 배척도 아니다.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일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의 힘.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고, 함께 있어도 지치지 않는 마음의 힘이 자유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무거운 현실에서 도망가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자유롭지 않아서 힘든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