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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Oct 28. 2019

적당히 괜찮은 하루를 허탕치고

'적당함'을 선택하며 잃어버린 취향

쉬는 날이 더 피곤할 때가 있다. 어제가 딱 그랬다. 느지막히 일어나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생각 난 곳은 몇 번이나 가본 곳이었고, 모르는 곳은 몰라서 생각을 못했다. 검색을 하자니 짜증이 밀려오고, 검색을 한다 해도 좋아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마음이 편안한 날'을 보내고 싶은 단순한 바람이었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에는 취미가 없었다. 요리는 미지의 세계였다. 평생 먹을 줄만 알았지 도통 만드는 것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내 로망은 누군가 갑자기 우리 집에 쳐들어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쉐프 놀이를 하고 나는 쉐프가 멋지게 소금을 쳐댈 때 뒤에서 조용히 행주를 빨고 뒷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노동보다 더 괴로운 미지의 행위는, 도무지 손을 댈 엄두 조차 나지 않는 것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잡동사니들이 각자의 쓸모를 기다리며 집안 곳곳에 쌓여 있는 그런 집에서 셀프 인테리어라니. 그렇다고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우리가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유튜브나 뒤적거리며 하루를 보낸 후, '아 조금 있으면 내일이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캠핑을 가기로 했다. 고민만 하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다 흘러 있을테니,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선택을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우리가 늘 가던 캠핑장은 계곡이 흐르고 계절마다 빛깔이 바뀌는 아름다운 산 속에 있었다.  남편은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불멍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저 자연을 좋아했다. 크림이도 캠핑장에 가면 나무 냄새, 흙냄새, 자갈 냄새 맡느라 정신이 없으니 크림이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땀흘리며 텐트를 치는 것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1박 하기에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었다. 적당히 괜찮은 선택.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벌써 바람이 차가웠다. 추운 날씨에 취약한 나는 옷을 4겹이나 껴입었지만 그래도 찬 기운이 서서히 옷감을 적셨다. '가지말까'라고 문득 스치는 마음의 소리는 무시했다. '적당히 괜찮은 선택'에서 이 정도 불편함은 동의 한 적 없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옵션 같은 것이었다. 텐트도 두 개나 칠거고, 모닥불도 피울거고, 전기장판도 있으니 괜찮을 터였다. 한 겨울에 캠핑한 적도 있는데 이 정도 추위 쯤이야.


오후의 겨울 하늘은 벌써 어두워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일요일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차를 끌고 나왔다. 도로는 보내기 아쉬운 시간을 쫓아 마음 급한 차량들로 가득했다. 갑자기 우리 차 앞으로 흰색 차량이 방향지시등 표시도 없이 쑤욱 대가리를 밀며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끼어들기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경고음을 날렸다. 빠앙. 그 때 내 머리에도 경고음이 울렸다. 아차.


"아 맞다. 전기장판이랑 바닥에 깔 매트를 따로 빼놨었네."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우리는 캠핑장비도 꼭 필요한 것만 하나씩 사서 모으다보니 모든 장비가 제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챙길 때도 필요한 장비를 잘 보고 챙겨야 했는데, 하필이면 이 추운 날씨에 바닥에 깔고 잘 전기장판과 매트를 빠뜨리다니.. 차가운 땅기운을 받으며 입이 돌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생체실험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남편은 혹시 매트를 대신해 깔만한 것이 있는지, 내가 전기장판 없이 잘 용기가 있는지 묻더니 그냥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히노끼탕에서 온욕을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애견동반 펜션으로 다시 '적당히 괜찮은 선택'을 찾았다.


요즘 남편은 부쩍 피로감을 호소했다. 밤에는 잠을 잘 자지도 못하고, 건강의 상징이던 허벅지는 점점 얇아졌다. 하는 일이 피곤하기도 하고, 그 일이 당신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있었고, 또 다시 새로운 먹고 살 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이럴 때 히노끼 탕에서 뭉친 어깨라도 풀면 하루가 편안해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뜨뜻한 황토방도 있었는데, 나는 황토방에 누워 뜨뜻하게 허리를 지지는 것을 좋아했다. 크림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자그마한 앞마당도 있었으니 크림이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펜션을 찾아 가는 길, 아직 밤이 되려면 멀었지만 구름 없는 하늘도 구름이 덮인 것 같은 회백색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멀리 바다가 보였고, 펜션 단지를 지나 너른 논이 보였다. 소녀인 듯 처녀인 듯 한 여인은 덩치 큰 진돗개를 산책시키고 있었고, 동네 어른들은 벼를 베고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지나 얕은 개울물을 따라 산을 올라가니 사진으로 봤던 펜션이 보였다. 산 한가운데 덩그러니 지어진 펜션이었다.


"우리 그냥 다른 데 가자."


남편이 차를 세우고 말을 꺼냈다. 차 한대 겨우 지날 수 있는 폭의 논두렁에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과 이 펜션을 오기까지 마트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 지나치게 외지고 투숙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던 찰나였다. 적당히 괜찮은 선택에 하루를 저당잡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별 대답 없이 근처 해수욕장을 네비게이션으로 찍었다.


해수욕장에는 멀리 태평양에서 몰고 오는 힘찬 바람을 타고 파도가 일렁였다. 사람은 없었다. 가게도 문을 닫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둘러 보다보니,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몇 주 전 드라이브 삼아 왔던 곳이 이 근처였다. 그 날 우리는 자동차극장에 영화를 보러 왔다가 이 근처 바다를 들렀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 곳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라도 한 편 볼 생각이었다. 추어탕집이 보였다. 칼국수 집도 보였다. 허름한 아구찜집도 보였다. 남편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고, 나는 시원한 국수라도 한그릇 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콩국수집과 막국수 집을 보기는 했지만, 죄회전을 해야 하는 곳이었고 갑자기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차량들이 줄지어서 우리의 길을 막았다. 우리는 한 참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렸다. 조금 더 달리면 돌릴 수 있는 길이 있겠지. 조금만 더 가면 기회가 있겠지. 번번히 우리의 기대를 무시하고 매섭게 전조등 불빛을 휘날리며 차들이 따라 붙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가야 할 길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바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산 중턱의 고속도로로 가는 입구 근처 까지 내몰린 상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 뿐이었다. 배가 고팠고, 피곤했다.


졸음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차만 타고 있었는데도 노곤했다.


"노래 한 곡 불러 봐바."


달리는 차안, 앞에서 달리는 차들이 버리고 간 서글픈 붉은 빛을 받으며 남편이 말했다. 잠결에 MR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최근에 결혼한 친구의 축가를 불러준다고 준비했던 것이었다. 축가는 망했다. 막상 앞으로 나가니 너무 떨려서 땅만 보고 노래를 했다. 나름대로 박자를 맞춘다고 주먹을 쥐고 왼 팔을 까딱까딱 움직이는 게 꼭 옛 개그콘서트에서 콧물을 바르고 바보 놀음을 했던 '빠꾸' 같았다. 마지막에는 결혼하는 친구를 보니 울컥 울음이 나왔다. 결혼은 좋은 것인데(정말 좋은 것인데!),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에 '친구야 결혼 축하해'라고 말 한 것은 잘 한 것 같았다. 연습할 때는 계속 '친구야 생일 축하해'라고 말했었다.


"별 빛이 내린 밤, 그 풍경 속 너와 나.."


부끄럼 없이 남편의 신청곡을 부르며 나는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적당히 괜찮은 선택'들을 생각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괜찮은 학교를 고르고, 적당히 괜찮은 도전을 하고, 적당히 괜찮은 직장을 고르고.. 나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늘 적당히 괜찮은 선에서 타협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현실적인 한계치와 사회적인 기대감을 고려해 나쁘지 않은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적당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무지 애를 써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애써서 얻어낸 그 적당함 속에 나의 취향은 없었다. 


물론 적당한 선택을 하면 좋은 점도 있었다. 열정은 취향을 불씨 삼아 타오르는 것인데, 우러나오는 열정 없이 애쓰기만 하는 '적당함'은 실패에도 빠져나올 변명거리가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잡아먹은 시간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변명 하나면 빨간약보다 더 두루 먹히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어제도 그런 변명으로 흘려 보낼 수 있는 하루였다.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딱히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실패했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다는 그런 변명으로. 즐겁지 않았다고 해서 나빴던 것은 아니라며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한 무수한 선택들이 외면했던 나의 취향이 그리웠다. 나는 나의 그림이 사회적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부터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적 사람 얼굴을 보라색으로 칠하며 그림을 그렸던 순수한 즐거움이 그리웠다. 만화영화 주제곡을 따라부르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흉내내는 그런 쓸모 없는 재미도 그리웠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말았던 아이같은 고집, 풍선이 날아갈까봐 하루종일 꼭 쥐고 다니는 그런 고집이 너무도 그리웠다.


나는 내가 적당히 괜찮은 선택들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길을 달리는 길, 작별을 고하는 차창 밖의 풍경이 마치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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