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p369 (1947년 9월 7~8일 일기)
니나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특별한 여성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방향으로 나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투쟁뿐이었다.
p339 (1947년 5월 5일 일기)
죽은 뒤에 생전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오. 내가 지은 죄란 결단을 회피했다는 것이오. 나는 그것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아마 유약했기 때문일 것이오......... 진정으로 삶을 살지 못했을 때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잘 있으오, 잘 있으시오.
p34-35 (1947년 9월 8일 슈타인이 니나에게 쓴 편지)
한번은 내가 죽는 꿈을 꾸었어요. 그것은 끔직한 공포로 가득 찬 순간이었어요. 마치 목이 졸리고 찢기고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었을 뿐, 그 다음에 온 것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나는 아주 가벼워졌고 날아다녔어요. 내 몸은 수정같이 보이는, 그러나 수정은 아니었고, 딱딱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아주 가볍고 밝은 물질로 되어 있었어요.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밝아져서, 마침내 은색 공기로 만들어진 공 같은 것이 되었어요. 아주 황홀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깨어났어요. 잠에서 깨어난 그날 아침 나는 끔찍이 불행했어요. 나는 벽과 바닥과 천장이 있는 방에 나무와 새털로 만들어진 침대, 내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이미 무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았을 때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힘들게 일으켜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하는 육체 말이에요.한계를 가진 이런 육체적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나요? 그것과는 다른 것이 있는데, 우리가 동경하는 그런 자유가 있는데도 말이에요..... 나는 죽고 싶은 거예요. 이해 못하시겠어요? 사는 것 보다, 여기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p45-46, (1929년 9월 20일 슈타인의 일기)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p77-79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p127 (1933년 1월 23일 니나의 편지)
니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지 꽉 붙잡고 있으려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집시 같은 데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삶은 잠정적이었다. 한군데에 천막을 치고 한동안 살면서 정성을 쏟다가 그곳에 대해 알 듯하면 망설임 없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떠난다. 그녀의 얼굴에는 야생적 자유에 대한 행복감과 고향 없는 사람의 슬픔이 한께 있었다. 깊이 잠든 얼굴에도 이것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니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완전하게 사는 삶! 나는 이것을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계속 생각했다.
p134-135
니나는 성난 듯 말했다. 한번 어떤 일을 감행하고자 하면 누구나 용기를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이번에는 내가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누구나 다 무언가를 감행할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은걸.
그러나 나는 니나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니나의 본질에 있는 어떤 딱딱함 같은 것이 천성적으로 유약한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나는 자기 자신에게 극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하는 것이리라. 나는 니나와 함께 사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니나와 함께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걸 감지했다.
p154-155
거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기도하는 거니?니나는 나를 아주 조용히 바라보더니 바로 지금처럼 금방 얼굴의 광채를 거두었다. 참견하지마. 니나는 말했다. 나는 이걸 할 수 있어야만 해. 무얼 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니? 나는 물었다. 모든 것,그녀는 말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언제든 따뜻한 침대에서 나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는 것, 사나운 개한테 가는 것, 매질을 견디고 소금을 먹는 일 등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해.
p156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p127 (1933년 1월 23일 니나의 편지)
니나, 나는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이제 마흔아홉 살이야. 오십이 다 된 여자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해야 해. 그러나 다 지나간 일이야. 대개 적어도 이 나이면 지나갔다는 것이 기쁠 뿐이야. 나같은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을 눈물, 히스테리, 갈등,화해, 끝없는 오해, 몇 번의 아름다운 밤, 오랜 기다림 등이 서로 막 뒤섞여 있는 것으로 추억하지.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