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하고 살자

공무원에 대한 고찰

by 김반장

가끔은 국가가 변덕스러운 부모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취지가 분명했을 훌륭한 기획이 결재와 결재를 거듭하는 동안 이름 모를 지휘자들의 욕망이 개입되고, 하달과 하달을 거듭하며 또 다른 상급자들의 욕망이 침투하여,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해석되고 필연적으로 오해를 동반했다. 사람은 많고 조직은 거대한데 국가가 작동하는 과정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활자는 정적이지만 현장은 동적이기 때문일까. 최전선에서 국민을 대하는 공무원들에게는 조직의 상층부에서 하달된 말이 비현실적이거나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짧은 공무원 생활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자면,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이야’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감동을 주고 싶은 열정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정도를 지키지 못하면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정으로 국민의 삶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나치게 뜨거운 것은 지나치게 차가운 것만큼이나 해로웠다.

동시에 그 역할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국민을 이해시키는 데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쉽게 상처 입었다. 어느 순간에도 국민이 주권자라는 헌법적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공무원들은 그들에게 화 낼 권리도, 권위를 내세울 권리도 없다는 마음으로 낮추고 또 낮추어야 했다.

그에 따라 국민을 대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동시에 결단을 두려워해서도 안됐다. 국민에게 몰인정해져서는 안 되지만 단호함이 필요한 경우는 분명히 있었다. 국가는 모두가 화합하여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사는 나에게 우리 조직 구성원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자존감이 낮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상담사는 우리 조직이 가장 난해한 조직이라고 했다. 다양한 기질의 사람이 필요한 곳이지만 동시에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도 적응하기 힘들어한다고 했다.

공무원이 좋은 직업일까?


분명 ‘헬조선’이라 여겨지는 온갖 부당함의 온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취준생들에게는 적당한 타협의 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공무원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불편하고 짜증 나고 공포스러운 현장엔 공무원이 있다. 국민들은 급박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만 그들을 찾는다. 거기에 더해 국민이 요구하는 품위의 기준은 날로 높아지고, 카메라를 든 감시자들은 사위를 둘러싸고 있다. 작은 오판도 이미지화되면 국민적 비난에 시달릴 수 있기에, 그 감시망 속에서 이제껏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왔던 자유를 박탈당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공무원의 수직적 계급구조는 조직 안팎에서 괴로움을 양산한다.

공무원 조직은 새내기 공무원들이 미숙한 상태에서 상처 입은 민원인들을 대하고 그렇게 그들이 법과 행정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 전반적 업무의 이해도가 높아지면 점점 현장 뒤로 물러나는 구조이다. 연륜 있는 상급자가 미숙한 하급자를 지휘하는 수직구조는 조직을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구조이지만, 현장에서 공무원을 마주하는 민원인들이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 앞의 공무원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높은 계급의 지인 이름을 불러대거나 전화하는 경우, 관서장을 찾아가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일은 이상 놀랍지도 않다.

수직적 계급 구조 안에서 모든 개인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상급자들이 하급자들의 노고를 취해 일신의 영달을 탐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상급자의 연륜을 하급자가 존중하지 못하여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상급자는 상급자대로 외롭고 하급자는 하급자대로 괴로운 계급사회에서 새로이 도입된 성과주의는 개인을 성난 말처럼 몰아붙인다.

공공의 영역에서 성과는 공허하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에서는 수익과 브랜드 가치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국민에 대한 봉사는 가시적인 수치로 계량하기가 어렵다. 성과 기준은 투박한 현실을 기괴하게 변주하여 만들어낸 카메라 안의 모습만을 치하할 수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칭찬으로 춤췄던 고래는 스스로 춤추지 않는다. 공허한 평가시스템에 낙오자가 될까 불안에 떠는 공무원들은 상처 입은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소통할 수 없는 불신의 늪에 빠져 ‘냉소’라는 기막힌 보호막을 형성한다. 당연히 그들은 스스로 춤출 수 없다.


세상도 변하고 조직도 변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권위자에서 이제는 국민과 발맞추어 함께 걷는 보조자로서의 지위를 자처하고 있다. 국민이 공감하는 행정으로 거듭났다는 건 분명 지난 과오를 반성하는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명확한 비전을 체화하지 못한 이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몸을 낮춰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해 괴롭다.

그들도 사정은 있었다. 채신머리없는 홍보로 인해 국민들이 자신들을 멸시하지 않을까, 권위를 잃은 공무원들이 복잡하고 폭력적인 현장에 노출된다면 무기력해지지는 않을까, 또 그 무기력이 국민들의 불신과 비난을 사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분주함에 중독된 세상의 변화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이러한 이유로 거대 조직을 움직이는 복잡한 행정체계 안에서는 작은 변화도 더 바쁘고, 복잡하고, 가혹하지만 느리게 일어난다.




공무원이 좋은 직업일까?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시기할 만한 재목도 아니다. 타고난 성질머리도 둥그스름하게 깎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일이고, 부족한 상상력을 덧대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애써야 하는 일이며, 법과 상식과 국민의 마음을 부단히 공부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공무원만 되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말로, 시키는 일만 잘하면 훌륭한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 선배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말했다. 적어도 10년 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말했다. 감히 나 같이 샛 병아리들이 설쳐 대다가 큰 코 다칠 거라고 경고하고 또 경고했다. 소신은 철없는 자의 아집이고, 발언은 오로지 권력을 가진 이에게만 허락되는 세상에서 나는 그들이 허락한 것만 보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로 굴복했다. 아마도 1980년대 시민들에게 총을 갈겨댄 군인들, 박종철을 고문하고 이한열의 뒤통수에 최루탄을 쏜 경찰들도 그렇게 키워졌을 것이다. 판단이 마모된 채로 그렇게, 자신들의 영혼을 내팽개친 채로 그렇게.

판단도 연습이 필요한 일인데, 그때는 생각조차 감시당하는 듯 두려워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를 미워했다.

신중하게 고민하는 연습, 때론 틀린 판단을 겸허하게 반성하는 연습,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을 갈고닦는 연습, 그러고도 자신을 용서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연습 없이 살다 보니 타인의 삶이 더 단순하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현장은 매 순간 새롭고 민원인들은 각기 다 달랐을 테지만, 모든 게 비슷해 보이고 지겹게 느껴졌다. 아이 같은 호기심이 사라지고 무엇이든 자세히 보지 않게 되었으며 지루한 문어체를 반복하게 되었다. 불현듯 일어나는 고통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도착한 곳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인지도 모르고 그냥 살았다. 괴로움을 마주하지 않고, 화해하지 못한 과거를 땅에 묻고는 그저 살던 대로. 그렇게 살아도 인생은 살아졌다. 익숙하고 수동적인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눈 앞의 하루를 좀먹는데도, 살기는 살아졌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수동적 고통의 현현이다. 군부 독재 시절 군인이었던 그는 광주에서 총을 쏘다 어린 여학생을 죽였고 훗날 경찰이 되어 무자비하게 사람을 고문했다. 후에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동업자에게 배신당하고 주식으로 돈을 잃었다. 가족에게도 외면당하지만 바람피우는 아내를 찾아내 두들겨 패고도 내연녀를 만나 고기를 구워 먹었던 그가 애석하진 않다. 그는 영화의 초반부터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이 너무 많아 다 죽일 수도 없다고 울부짖는다. 증권 중개인과 동업자, 이혼한 전 부인에게 고통의 원인을 돌려버리고, 박하사탕같이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에 침잠해 망가진 삶을 한탄한다.


그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고문했던 대학생에게 정말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반복해서 묻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그 대학생의 인생이 자신처럼 권력에 짓밟히고 세월에 때 묻길 간절히 바라듯, 동지를 배신하고 권력에 순응하라며 물속에 머리를 처넣었다. 그의 첫사랑이 남긴 박하사탕이 군화에 짓밟혔던 그 순간처럼 타인도 박하사탕을 깨고 국가의 폭력에 굴복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는 마치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었던 과거의 자신에게 보복하듯 순수한 타인을 짓밟았다. 그는 그가 왜 괴로운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스쳐간 모두를 원망한다고 부르짖으며, 그는 그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미워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사회구조 안의 피해자였고, 동시에 그의 인간성을 저버린 가해자였다.


영호의 삶은 거대한 현실 앞에서 힘없는 개인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지는 않는다.

험난하고 좁은 길이라 해도,

인생에는 언제나, 다른 길이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영호처럼 생각을 버리기로, 굴복하기로 했었다. 상황은 언제나 나를 다급하게 내몰았고, 나는 영호처럼 별생각 없이 이름 없는 얼굴들을 따라 가장 '익숙한' 선택을 했다.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 자존감까지 무너졌을 때야 비로소 나는 다른 선택지로 옮겨가 지나간 일들을 마주하고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선택은 찌질하다.


찌질한 시작이었지만, 내 삶은 아직도 그렇게 느리게라도 움직이고 있다. 시장바닥에 널브러진 생선같이 귀하지 않은 삶일지라도 그 파닥거리는 몸짓에 언젠가는 세상이 응답지 않을까.


그러니 생각하고 판단하길 두려워하지는 말자.




나는 매일 우리 집 강아지의 물그릇을 비우고 새 물을 떠 놓는다. 물그릇은 하루만 지나도 미끌한 물때가 끼어 있다. 매일 아침 물그릇을 비우고 신선한 물을 채우다 보면 ‘선심초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선심초심이란 ‘선의 마음은 초심자의 마음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네 인간사는 매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매 순간 다르다. 매일 물그릇을 비우고 새 물을 떠 놓는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익숙한 일상에도 물때가 끼고 종내에는 썩고 병들 것이다.


나는 이제 경찰공무원으로서 봉직하며 고통으로 얼룩졌던 짧은 시간과 화해하려고 한다.


비로소 내 마음의 물그릇을 비울 용기가 생겼다.


나는 나를 용서한다.


하염없이 부족했고 투박했으며 뾰족했던 나를 용서하고, 불안에 떠는 타인의 공격에 스스로를 방치했던 나를 용서하고,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한다.

세상의 악의 4분의 3은 공포에서 기인한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결핍에서 비롯된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에 책임을 통감한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도 나를 반성하고

나를 용서하여 타인을 용서하는 길에 이르리라 결단한다.


내가 얼마나 더 경찰공무원으로 살아갈지 알 수 없다.

홀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도 알 수 없다.

빈정대는 타인의 목소리에 다시금 주눅 들지는 않을까, 다수의 웃음소리에 웃어넘겨서는 안 될 일을 웃어넘기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두렵지만, 매일 똑같아 보이는 것들을 새로이 대하면 이제껏 가보지 않았던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 본다.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묻기 전에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잊지 않기를,

짓밟힌 순간도 그러안고 다시 화해하기를,

타인의 아름다운 것들을 훼손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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