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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Nov 29. 2020

빌런 없는 사무실은 처음이다.

복직 후 한 달

내가 다시 돌아간다는 건 그 안에서도 크나큰 이슈였다.


먼저는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와서는 내가 원하면 다른 곳(분명 징계성 조치라고 볼 수도 있을만한)으로도 갈 수 있다며 어색하게 권유했다.

내가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대상자들과 같은 사무실로 돌아가겠다고 버티니

그다음엔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보내주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기관장의 지시까지 있었다고 한다.


글쎄, 어쩌면

억울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내가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당함도 감내하지 않고 말하고, 들으려 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말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답변들은 끝까지 따져 물었더니 더러워서 피하든, 무서워서 피하든, 어쨌든 피하고픈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차례차례 승진을 했다.

팀장의 묵인 하에 두 명이나 승진공부를 하느라 두 달간 무단으로 사무실도 나오지 않았지만 조직은 끝내 그들을 보호했다.

감사원은 주의조치에 그쳤다.

감사원의 결과로 터진 신문기사에서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뻔한 거짓말이 인터뷰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이는 기자가 홍보담당자에게 기사 내용을 보내 회신받은 것이라 했다. 기자는 그들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단지 반론권 보장을 위해서 그렇게 기사를 냈다고 말했다. 평소와 다르게 홍보담당자로부터 회신이 빨라서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말도 덧붙이며.

수사관은 그들이 사무실 밖에서 공부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목격자가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10명의 직원들은 조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들의 모든 진술은 인정되었다. 그들의 변명과, 그 말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업무 매뉴얼 구석의 몇 글자로 내가 내민 물리적 증거들은 모두 부정됐다.

그들은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내가 차지할까 봐 불안해했던 몫을 야금야금 떼어먹고 원하던 만큼 주목받으며 그렇게 승진을 했다.


사무실을 옮겼다. 

끝까지 남아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 옮긴 곳은 원래 있던 곳에서 멀지 않지만 분위기는 정 반대다. 성과에 시달리지도 않고,  새로운 시책을 만들 필요도 없고,  기준도 없고 끝도 없이 우수사례를 발굴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고, 그것만 해도 쉴 틈 없이 바삐 돌아가며, 나쁜 놈을 때려잡는 영광은 없을지라도 저마다의 아픔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이다.

팀원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더 잘해야 한다거나 더 튀어야 한다는 강박 따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앞 날을 알 수 없는 승진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팀장님은 아무리 귀찮고 하찮은 업무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 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다. 업무는 세심하게 챙기면서 말은 아끼고 직원들 눈치를 살피되 호탕한 농담도 할 줄 아는 분이셨다.

나의 새 사무실에서는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지나치거나 과소하지 않도록 세상의 소금처럼 살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었던 빌런 없는 사무실에 출근해 보니 삶의 질이 사뭇 달랐다. 훅 치고 들어오는 공격적 언사를 걱정해야 할 필요도 없고,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출근할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출퇴근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감과 가깝고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내가 통제하는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인간적인 소망 말고는 불편함이 없었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고 매일 같은 시간 기차를 타고 일찍 사무실에 도착한다.

내가 감당할만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또 더한 것도 이겨낼 거라 믿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

이렇게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는 왜 그리 어려웠던 것일까.


24시간 중에 먹고 자고 싸는 10시간을 빼고, 출퇴근하는 2시간을 빼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위생을 유지하고 쇼핑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2시간도 빼고, 남은 10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무실에서 타인을 통제하고 착취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어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빌런 없는 사무실에서 살아보니 알겠다.

사람은 누구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빌런 없는 사무실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면 그렇게 작동하는 사회를 구성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며 외면하고, 피해자의 나약함을 탓하는 일은 그들에게 날 선 창을 꽂아 넣고 소리도 지르지 말라며 타박하는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제는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짓들을 용납할 마음이 없다.


조직 안에서 희망을 잃은 나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직장 내에서 훼손된 연결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인간들이 자신의 자그마한 이익을 위해 큰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존재감에 위협이 되면 계획적으로 음해하거나,  조직적으로 맹공을 펼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을 늘려 나가며 세력을 과시하고 그 세력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크고 작은 부당함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것도,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약한 개인이 어떤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 개인의 문제로 남겨질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실들을 인식하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사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인간과 되돌릴 수 없이 단절된 기분이다. 사람을 믿지 않는 다는 건 일견 쿨하고 성숙해 보일지라도 사실은 어리숙하고 불행한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신뢰로 행복의 주춧돌을 쌓는 존재니까.

앞으로 1년, 조직의 외로운 섬이었던 내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조직에게도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때 돼서는 또 다른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희망 없는 곳에서 목표도 없이 의미도 없이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짓이다.


복직 후 한 달,

지금까지는 꽤나 잘 돼가고 있다.

내가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고생하는 팀원들을 위해 가습기도 새로 들이고, 핫팩과 눈 찜질 팩과 따뜻한 차도 갖다 놓았다.

가난하고 병든 민원인들이 찾아올 때면 더 친절하고 더 세심하게 설명해 드린다. 휴직하며 깨달은 건데, 나란 인간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내 이익을 위해 애쓰는 일은 체질상 맞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 숨어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비록 그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해도,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버리지도 못하고 챙기지도 못하면서 내 팔자대로 산다.

하하호호 웃고 떠들면서 스쳐 지나가는 그들을 볼 때면 슬쩍 울적하고 주눅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당당히 어깨를 한 번 더 펴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한 번 더 호의를 베푼다. 말없이 뛰어다니느라 신발이 닳고 옷이 해진 우리 팀원들을 위해 향기 나는 방향제와 시원한 커피라도 한 번 더 대접한다.

가끔 그들의 승진이 배알이 꼴릴 때면, 아주 잠시 혼술로 나를 달래고는, 숙취에 금방 후회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매일 출근하는 길, 기차역에서 잠들어 있는 노숙자 할아버지에게 핫팩과 마스크를 건넨다. 7시 30분, 시장 길바닥에 스티로폼 박스만 놓고 앉아 시락국과 비빔밥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핫팩을 건넨다. 빨갛게 언 손으로 그 옆에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에게도 핫팩을 건넨다. 내 기분 좋자고 핫팩을 나누고 돌아서는데 비빔밥 아주머니가 밥이나 한 술 뜨고 가라며 뒤에서 나를 부른다.


사람 사는 게 별 게 없다.


비빔밥 한 술이 술 한 잔보다 나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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