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함께 살기

by 김반장

복이라면 복이다. 나는 꼰대 복이 많다. 나고 자란 집에도 내 또래의 부모들보다 10살쯤 늙은 엄마 아빠가 있었고, 그들의 말본새를 그대로 닮은 7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철딱서니 없이 속옷까지 훌렁 벗어놓고 다니면서도 할아버지에게 시퍼런 지폐를 받았던 남동생은 참으로 구김살 없이 자라났다. 20살이 되어서는 재수 삼수도 아니고 5살 넘게 차이나는 신입생들로 빼곡했던 대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조직 생활까지 이어오고 있다.


곱게 화장하고 나가던 20살 언니에게 술집 여자냐며 소리치던 아빠, 남부끄러운 것이 제일 무섭다면서도 남편을 위해 낮에는 요조숙녀가 되고 밤에는 창녀가 되라던 엄마, 남자 친구와 함께 걷다 걸리면 머리채를 잡아 끌 거라던 언니 사이에서 어째 저째 살아남았다. 그 말들이 모두 그들에게는 이미 잊힌 헛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 말들은 찢긴 살점을 뜯어먹으며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를 낸다. 그 말들은 나를 잘게 조각냈고 매일의 부끄러움과 죄책감, 끝내는 존재의 무용함까지 발라냈다. 나는 자주 패배했다. 순응적인 여성으로 설계되었으나 그 설계에 순응하지 못했다.


나는 나뭇결에 가시가 맺힌 복도를 맨발로 뛰어다니던 시골 소녀들과 어떻게든 지방 중소도시를 벗어나 보겠다고 밤낮없이 공부하던 소녀들 사이에서 줄곧 이 고통스러운 굴레는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를 고민하며 밖으로 숨어들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도 속하지 않았던 밖의 세계에 숨어 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프란츠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순진무구한 밝은 세계를 경멸하는 싱클레어처럼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다.


잠시의 우월감이 전부였다.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억하는 한 용기 있고 대체로 비굴하게 살았다. 사계절마다 바뀌는 시시비비를 운운하며 아는 척, 똑똑한 척, '척'만 늘어가는 빈 껍데기가 되어 적당히 그 순간만 모면하며 살았다. 내가 한 선택 중에 스스로 한 선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기에 나는 무모하게 발을 내디뎠고, 그것이 용기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그들을 미워하며 실상 그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차가운 분노는 나를 더 유약하게 만들었다. 그들과 닮지 않으려 할수록, 느껴졌다. 그들은 매일 내 안에서 나 대신 말하고 나 대신 화내고 나 대신 웃고 있었다. 그들은 떡하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었고, 그들이 있기에 나 또한 지금 숨을 쉬고 있었다. 이유 없이 우수수 죽어나간 약하고 어린 영혼들이 타국의 칼에 치이고 자국의 군화에 밟히던 긴 시절 굴욕적으로 씹어 삼킨 모래 섞인 쌀알들이 내 피고, 살이다. 그러고 살아 남아 서로 부둥켜안고 낳은 자식들이 나다. 그들의 생존 방식이 이제 와서 비틀어지고 헐거워졌다고 해서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인디언의 영혼을 말하는 소설에서 이해는 사랑의 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워하며 사랑해야 하는 그 가혹한 운명 앞에서 나는 사람으로 분별하지 않고 행동으로 분별하는 법을 익혔다. 행동은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꼰대는 원래 권위를 이용하여 고루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늙은 사람이라는 뜻이었지만, 젊다고 해서 꼰대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늙은 꼰대도 있고 젊은 꼰대도 있고 어린 꼰대도 있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다수의 힘이나 젊음 특유의 객기가 권위를 잉태할 때도 있다. 권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그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 존재를 죽이거나 죽은 상태를 연극하는 모두가 꼰대다. 꼰대는 정상과 평범을 멋대로 규정하고 그에 어울리지 않으면 부재한 것으로 가정한다. 그 앞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주, 존재하지 않거나 고향을 잃은 것처럼 떠도는 기분, 옅은 연기처럼 허무하고 무가치한 기분을 느낀다.


나는 꼰대들의 개별적인 행위 중 어떤 지점은 용서한다. 스스로 연고를 바르고 나를 할퀸 그 언어를 주워 담아 다시 나열해 아이 같은 그들에게 꽃을 만들어 준다. 아빠, 나 정말 마음이 아파요.


때론 마음으로는 용서해도 따박따박 말대답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주임님이 승진임용식에 나보고 꽃을 전달하라고 말했다. 내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잠시 웃고는, 87년도 아침마당에서 들을 법한 말씀이라고 말대답을 했다. 최근 kbs 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짐승'을 보고 그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나 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87년이었는지, 아침마당이었는지도 모른다. 더더구나 아침마당은 91년도부터 방영됐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용의주도한 기만이었는지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 팀은 승진자의 건장한 파트너가 꽃을 전달했다. 나는 가끔 주임님이 혐오 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내뱉는 '여자가 어쩌고저쩌고', 예컨대 어수룩한 운전자를 지칭하거나 청소상태가 말끔하지 않았을 때 하는 말 등을 들으면 무심코 창자가 쪼그라든다. 내가 공주는 아니지만, 엄지 정도는 된 기분이다.


물론 말대답도, 내가 보고 자란 가부장적인 틀의 일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는 약자이기에 웃어넘겼고 말대답은 그들이 선취한 대화 안에서 허락받은 발화이기에 그들이 정한 규칙 안에서만 발동했다. 나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강하지는 못하다. 동시에 속도 약간 꼬였다.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외쳤던 건 노동하지 않고 방을 누려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고, 100년 전 나혜석이 모(母)된 감상기를 쓸 수 있었던 건 좋은 가문에 당시 여성으로서는 감히 바랄 수 없는 교육을 받은 데다 고위직의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슬쩍 뒤로 물러서 그들을 질투한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혜석은 이혼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채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라며 대중 앞에 마지막 숨을 내뱉고 무연고자로 죽었다. 그녀는 고독으로 용기의 값을 치렀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값을 치러본 적이 없다.


값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조금의 수고는 하는 편이다. 나는 꼰대들의 어떤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을 착취하는 행위 같은 것 말이다.


착취와 자의식 과잉은 달리 봐야 한다. 착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는 인식 없이 이용하고, 그 고통은 전적으로 타인의 몫이라 믿으며, 그들이 진실을 폭로하면 그들의 나약함을 공격하여 목소리까지 빼앗는 행위다. 이 악질적인 행위는 대중의 무지로 대충 봉합해도 곰인형의 솜이 터지듯 속절없이 삐져나온다. 세상에 전시된 착취의 고통은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재갈을 물리고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수인한도를 넘어서 삐져나온 솜덩이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자의식 과잉은 평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비대해진 자의식으로 소리 지르거나 수줍음 밖에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자의식이 과잉된 꼰대의 포효는 순간의 발작에 그친다. 발작은 강렬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자의식 과잉이 착취보다는 낫다. 또 자의식 과잉은 착취에 비해 조금 더 '순진한 편'이다.


우리 아빠는 순진한 면면이 있다. 아빠는 개구진 아이처럼 사람을 괴롭히고 세상 가장 행복하게 웃는다. 타인이 얼마만큼 상처 받을지는 생각지 못했다가, 막상 미안한 듯 아이스크림 하나 건넸다가, 아빠 맘도 몰라 준다며 버럭 화냈다가 인생을 서글퍼한다. 나는 아빠 안에서 매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아빠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은 모두 자의식 과잉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기 안에서 째고 나오는 소리만 할 줄 알지 도통 들을 줄은 모른다. 남편은 우리 가족들을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고 숨 가쁘게 쏟아내는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를 밤새 들어주다 오래도록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내뱉지 못할 울분을 쌓아뒀다가 나에게 토로하던 남편은, 그 괴로움 속에서도 아빠의 미소가 진짜인 것을 안다고 했다.


여자라서 꽃을 주라 했던 그 주임님도 순진한 면면이 있다. 쌍시옷으로 구성된 욕은 달고 살면서도 팀원들에게는 욕하지 않는다. 상스러운 유머 삼아 정치인을 욕하며 슬쩍 우리가 웃는지 눈치를 살핀다. 말대답하는 딸내미 때문에 골치 아프다면서도 '우리 딸 똘똘하지?'라고 말하듯 자랑스레 웃는다. 술에 취해 괜스레 딸에게 전화해 버럭 성질부리고 끊으며 또 헤벌쭉 웃는다. 주임님은 늘 우리에게 '치아라 마, 대충 해라' 하면서도 일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복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임님이 하도 버럭대는 통에 이번에도 글렀구나 하며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임님에게 말도 붙이고, 농담 따먹기도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딸에게 별안간 사랑한다고 전화하고 산속으로 사라진 한 아버지를 보고 주임님은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고 무릎도 아프다. 그는 가끔 높은 아파트에서 밖을 보는 자신이 두렵다고 했다. 두려움을 이기려 그는 열심히 스쿼트를 한다.


욕을 달고 사는 주임님도, 걸핏하면 우리 강아지에게 헛발질하는 아빠도, 내가 다 알지 못할 숨죽인 세월을 혹처럼 목구멍에 매달고 산다.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그 혹에 엉겨붙어 소리로 변하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이다. 그들이 영 미우면 안 보고 살 수는 있지만, 어떤 행동들은 내가 용서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미운 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친절한 말에도 팔에 난 솜털 하나까지 쭈뼛 서게 하는 사람이 있고 미운 말에도 마음이 짠해지는 사람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꼰대 공포증에 시달린다. 조금만 권위적이어도 '꼰댄가?' 싶고, 자기보다 어린애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할라 치면 '내가 꼰댄가?' 싶어 두려움에 덜덜 떤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다소 꼰대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고 해서 꼰대가 아니게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빅터 프랭클의 책이었나, 두려워하는 대상을 피하려고 하다 보면 더 자주 생각하게 되고 오히려 그대로 행하게 된다는 심리 실험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꼰대와 함께 살기로 했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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