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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Dec 05. 2023

발전은 힘들어

바라는 게 많으니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허허허” 바보처럼 웃으며 말이다. 그냥 이런 시간이 좋다. 딱히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고 지금 당장 내가 끌리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는 삶이 만족스럽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을 집착 속에 살아야 했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그리 발버둥을 치며 오랜 세월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을 참아 왔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 했고 먹고살아야 했기에 늘 '돈'에 시달리는 삶을 버텨 왔었다. 그런 삶이 겨우 끝나 집에 돌아왔다. "나는 쉴 자격이 있어" 혼자 되뇌었고 그렇게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던 나날이 오래 이어졌다.


그렇게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지?"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온갖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서 버텨 왔는데 의미가 없다. 막상 "나 이거 잘해!"라며 내세울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꽤나 유명한 대학도 나왔지만 학교에서 대체 뭘 배웠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유튜브를 보면 자신의 능력을 열심히 갈고닦아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예쁘게 만들어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큰돈을 버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는 이들을 보며 돈이 될만한 기술도 하나 없는 무능한 존재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도 에너지가 떨어져 쉬고 싶다는 이유로 나태하게 살았다. 순간 굉장히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쉬는 것도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 계발을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자.


하지만 나의 자기 발전 계획은 늘 허사로 끝났던 기억뿐이다. 이번이 몇 번째 반복 중인지 모르겠는 정도다. 길어야 두 달 정도의 꾸준함이 내 인생 최고 기록이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걸까.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모든 것이 다 의지나 정신 때문이라면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난 것인데 어찌할 방도가 없다. 선천적인 한계라 넘어서지 못하는 거라면 내가 굳이 도전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해도 안 될 텐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문득 떠올랐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근데 나는 잘 못한다. 그렇다면 아직 나는 시작점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초짜가 아닐까. 그래서 계속 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대학교에 다닐 때도 특히 나를 성장시키고 싶어 안달이었다. 늘 부푼 꿈을 안고 살아야 비로소 청춘이니까. 3년 전,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논문, 레포트, 과제, 발표 준비, 아르바이트, 여러 일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면서 놓치고 가는 많은 가치들이 아깝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기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만 하다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 대한 통제력을 길러야 한다 느꼈다. 하지만 당장 시간이 잘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타임 매니지먼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늘 과제 마감 시간, 수업 시간,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에 쫓겨서 살았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정하고 해내는 일들이 거의 없어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그래서 자기 계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책 내용을 가슴에 새겨 나의 하루를 생산적으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아침은 6시 30분에 일어나고 명상과 운동을 통해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열자.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미리 짜놓은 식단대로 행하자. 영어 공부, 논문 준비, 발표 준비, 해야 할 일 모두를 계획된 시간 안에 미리미리 해 놓자. 열심히 살아서 나의 능력과 마음가짐, 그리고 가치를 업그레이드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자. 이렇게 결심했다. 마치 이미 성공한 사업가가 된 마냥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무채색 인생에 색이 입혀지는 듯했다.


하루이틀은 괜찮았다. 일주일도, 한 달도 할 만했다. 그런데 두 달째가 되면서 조금씩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고역이다. 오후 11시 30분이라는 시간에 바로 잠에 들기 힘들었다. 대충 일들을 다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8시 전후가 되는데 씻고 집안일을 하면 9시가 훌쩍 넘어갔다. 이제 2시간 후면 자야 했다. 바쁘게 살았음에도 밤에 나에게 줄 수 있는 휴식 시간이 고작 2시간이라니,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에 우울함이 짙어져 갔다. 마음에 답답함과 화가 하나 둘 쌓여갔다. "에라 모르겠다" 보고 싶은 드라마를 새벽까지 보기 시작했고 아침에는 핸드폰에서 울리던 알람소리가 듣기 싫어 아예 전원을 꺼 버리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내 일상은 다시 틀어져 갔고, 웅대한 이상을 갖고 시작한 자기 계발 계획은 막을 내렸다.




내 의지력의 문제였다. 내가 정상체중에 체력도 좋은 편이었으면 더욱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 때가 닥쳐야 해치우는 것이 아닌, 미리미리 계획하고 후딱후딱 일을 처리해 놓는 습관이 있었다면 더욱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일하거나 공부하는 일상은 나만이 겪는 지옥이 아니다. 누구나 다 이런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는 데 내가 실패를 반복했다는 것은 나의 의지가 승리자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너무 부족하다. 이상에 다가가기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과거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의지력이 없을 수밖에 없는 놈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지력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직 초심자, 비기너, 뉴비니 당연히 의지가 박약할 수밖에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은 평생 원 없이 먹어 오면서 운동은 게을리했으니 당연히 다이어트가 순탄히 진행될 리가 없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취미 레벨을 벗어나 프로 레벨로 들어가려 노력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뭘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놈인지를 이제는 안다. 


그렇게 조금씩 수면 리듬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졌을 때, 그때 영어 공부를 하루에 20분 정도, 글을 하루에 500자 정도씩 쓰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으면 되는 것이었다. 조금씩 그 재미를 알아가고 20분, 500자가 짧게 느껴지면 조금씩 늘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다 영어 실력이 늘어가고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면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일에 도전하면 된다. 대체 뭐가 그리도 급해서, 뭐가 그리 자신이 잘났다고 여겼기에 항상 모든지 '과하게' 잡으며 살아왔을까. '천천히'조차도 잘 안 되는데 '빨리'를 외치며 살았으니 아직 내가 이 모양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당장 리벤지의 일정이 잡혀있으니 오늘 무릎을 꿇더라도 내일 다시 일어나서 붙으면 된다.




결국 의지력이 아닌 내 오만함이 문제였다. 그냥 몇 번 해 보면 당연히 될 것이라 안 내 오만함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내 신체능력은 바닥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 본 적도 없고 언제나 뚱뚱한 체형을 가졌기에 체력이나 유연성은 뭐 말할 것도 없다. 글쓰기 실력도 프로 관점에서 보면 형편없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참이다. 그런데 효과적인 운동 일정을 구성해서 트레이닝을 할 수 있고, 좋은 구성이 뭔지를 알고 그대로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던 나의 오만함이 나를 늘 도망가게 만든 것이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니 앞이 막막했다. 앞이 깜깜하니 당연히 의지가 바닥에서 튀어 오르지 못했다.


발전이란 늘 힘든 법이다. 관성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정신줄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면 생각보다 발전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단, 자신이 기대하는 양만큼의 발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계속 질 생각이다. 원하는 정도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잊고 그냥 부딪혀 보려 한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또 계속 재경기를 신청하고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매번 굴복하더라도 가끔은 승리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또 지더라도 매 승부에 '배움'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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