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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Mar 02. 2023

[감사하는 삶] 우리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두 다둥이 맘의 방콕 여행 준비

혀니는 고2 때부터 친구다.

내가 수업시간에 침 흘리며 세상모르게 졸고 있으면 선생님 모르게 스을쩍 깨워주고 

고등학생의 세상 고민은 다 짊어진 듯한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시곗바늘 똑딱똑딱 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소중한 고 3 야자시간에 도망 나와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들어주었다.

공부 양은 내가 훨씬 많이 하는 듯 보였지만, 공부는 혀니가 잘했다.

나야 워낙 기본기가 없어 고 3에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죽을 똥을 싸댔지만 혀니는 차분히 준비해 왔기에 그 흔한 과외나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내가 지방의 대학 하나 붙어가지고 눈 많이 오는 추운 겨울날 엄마랑 기차 타고 대학 기숙사 알아보고 있을 때, 혀니는 입결이 별로 좋지 않은 우리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좋은 대학 좋은 과를 한 번에 척 붙어버렸다. 

내가 추-추-추합 추합은 대학 입시의 꽃이며 불합격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학생들에게 빛과 같은 마법의 단어지. 으로 구사일생 일지망 대학에 합격해서 너무 기뻐하며 혀니와 함께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갔을 때 

왜 담임샘은 혀니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지...

정말 그랬다. 사립학교였던 우리 학교의 화학 선생님으로 평생을 근무했던 나의 고3 할아버지 배 불뚝 담임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이뻐했다. 그땐 그랬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2022년 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애국도 이런 애국이 없는 다둥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우리라고 애 낳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왜 없겠느냐만... 

우리는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나야 그나마 아들딸 섞여있지만 혀니는 아들만 셋이니 말 다했다.

거기에 혀니나 나나 워킹맘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 와중에 나는 남편 따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살게 되었고 친구는 시어머님이 아이들 봐주시는 덕에 꾸준히 돈을 벌어 집도 조금씩 늘려가는 능력 좋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물론 겉보기에 이렇다는 것이고, 그 사이사이 말 못 할 또는 절친에게만 말할 수 있는 고민과 번민들이 왜 없겠냐만은...

막내가 초등학교쯤 들어갔을 때에야 우리는 가끔씩이나마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나마 내가 외국에 있는 통에 일 년에 한 번 만나면 많이 만나는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혀니는 자유롭게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부럽다고 했고

나는 뿌리 단단히 내리고 자기 자리 잘 잡고 있는 네가 부럽다고 했다.


작년,

혀니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 났을 때

혀니는 정말 패닉이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떡하니..부터, 

IB는 뭐니? 몇 학년으로 들어가는 게 좋으니? 수학 문제지는 가져가야 하는 거니? 입학 서류에 체크해야 하는 이 영어는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대로 적응해 가는 듯했고


우리 두 다둥이 엄마는 혀니가 사는 곳과 내가 사는 곳 딱 중간인 방콕에서 만나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친구와 하는 여행이라니 너무 들뜨지만 마음 한구석 걱정이 조금 되기는 한다.

가족이야 언제 일어나고 아침에는 뭘 먹고.. 이런 세세한 것들까지 다 아니 생각할 거리도 안 되는 것이 

친구는 일단 아침식사를 밥을 먹나 빵을 먹나부터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평생 딱 한번 함께 했던 대학교 시절 부산 여행에서 크게 싸우고 다시는 함께 여행하지 말자고 선언했었기에 걱정이 조금 더 크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의 이번 여행 준비가 꽤나 순조롭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은 돈을 아끼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간중간 방콕 관광 상품을 끼워 넣었다. 방콕을 지금까지 몇 번 갔지만 한 번도 한국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한 적이 없는 나는 완전 자유 여행 파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둘째 날에는 아유타야 선셋 투어, 셋째 날에는 짜오프라야 디너 크루즈를 예약했다. 

우리 중 하나가 어디를 가자거나 이동은 어떻게 하자거나 의견을 낼 때, 신기하게도 서로 그 의견을 잘 따라주고 뭔가 예약이 필요할 때는 혀니가 알아서 척척 진행해 준다는 것이다.


맞다. 

우리는 그 사이에 성숙해져 있었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우리 둘을 위해 우리가 주는 이다.

그러므로 

아주 간단하게라도 일정을 짜놓았지만 그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카오산로드의 사람 많은 맥주집의 구석에 앉아 아이들 이야기, 남편 욕하기 만으로도 시간 가는지 모르리라.

더운 낮 시간에는 아주 느릿느릿 걸으리라. 그럼에도 땀이 삐져나오면 에어컨 빵빵 나오는 조그마한 카페에서 망고 주스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때워도 좋겠다.

아이쇼핑을 많이 해서 다리가 무거운 오후에는 많고 많은 발마사지 집 중 하나에 들어가 발 마사지를 받으며 흐르륵 고개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

저녁에 별로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짜오프라야 강에 가서 20밧짜리 표를 사고 작은 배를 탄 후 석양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여행을 하는 동안은 남편이 무슨 와이셔츠를 입고 갔는지, 아이들 도시락은 어쩌며, 아들 시험 결과는 어떨지는 까맣게 잊고 지내리라.


생각해 보면 두 다둥이 아빠에게 감사하네.

우리가 여행을 즐기는 사이, 두 다둥이 아빠는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오롯이 만끽할 큰 녀석들은 괜찮으니, 

막내들을 잘 건사해 주기를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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