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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Mar 19. 2023

좋은 선생님

아이 상담이 있는 날이다.

대입을 앞두었기에 상담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이다. 회사에 반차를 낸 남편과 함께 2시부터 4시까지 15분 간격으로 아이의 선생님들을 만나댔다.


한 선생님이 상담 도중 물었다.

모든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일까? 
그래. 맞아. 좋은 선생님도 있고 안 좋은 선생님도 있어.

이 이야기가 뜬금없이 왜 나왔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분명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맥락이었을 텐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상담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알겠다.



우리는 Good afternoon~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의 영어 선생님은 50살은 넘어 보이는 약간 빛바랜 금발에 자잔자잔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목소리는 작지만 듣기 좋았으며 눈은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오늘의 상담을 위해 3가지 질문을 준비했다고 하시더니 칠판에 적혀있는 질문들을 읽어주셨다.

첫 번째 질문, 네가 영어과목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이니?

두 번째 질문과 세 번째 질문은 기억이 안 난다. 

(한국어라면 깨알같이 기억했을 텐데... 영어라 그 당시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기억이 잘 안 난다.)

일반적인 상담을 예상했는데, IELTS나  TOIEC 말하기 시험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듯해

우리는 긴장했고,

아이는 그냥 멈춰버린 듯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아이는 제가 이번에 점수를 잘 받은 것이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역시 한국아이인지라 점수에 집착한다.

선생님: 이 점수를 받은 것이 너에게 무슨 의미이니?

아이: 영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 받았어요.

선생님: 이 점수를 받기 위해 너는 무엇을 했니?

아이: 글들을 잘 분석하려고 하고...(blabla)...

선생님: 그럼, 니가 부족한 부분은 뭘까?

아이: 에세이를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제한 시간 내에 쓰는 연습을 해야 해요.

선생님: 그럼 니가 부족한 부분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 다양한 문학 작품과 비문학 텍스트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해요.

선생님: 맞아.(이 부분에서 선생님의 미소가 커졌다) 그리고?

아이와 선생님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대화가 이어지는데 나는 이것이 어느 순간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English Language and Liturature 과목의 학습 목표와 연결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이가 노력해야 할 부분과 IB 영어 과목의 목표가 한 점을 향하는 듯한 이야기가 지속된 후,

선생님: 너는 문장 구성력이 단단하고 치밀해. 라며 아이의 글쓰기에서 잘하는 부분을 알려주셨다.

니가 말한 글쓰기 시간을 단축하려면 글 쓰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해.

그것이 꼭 영어 과목과 관련된 글쓰기일 필요는 없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책상에 앉아 오늘 뭐를 배웠나 떠올려보는 거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보는 거지. 

이것은 어휘를 늘리고, 글쓰기 연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주 좋은 학습 전략의 하나 이기도 해.

두 번째로 어휘를 풍부하게 쓰면 너의 글쓰기가 훨씬 향상될 거야. 이를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해.

내가 예전에도 말한 적 있지? Big Think라고. (찾아보니, Bigthink.com은 과학, 기술, 경제, 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생각, 분석, 전망등을 기사, 인터뷰등의 형태로 제공하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이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먼저 제목들을 쭉 훑어봐. 그런데 절대 제목만 보면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끝나면 안 돼. 제목만으로는 이 사회가 너무 우울해 보이는 일이 많잖아. 니가 관심 있거나 재미있을 만한 기사를 꼭 클릭해. 그리고 읽는 거지. 오래 걸리지 않아. 하루에 10분.

하루 10분의 루틴.

그리고 나면 너는 읽으면서 모르거나 이해가 필요한 단어를  찾는 시간이 2-3분 정도  필요할 거야.


이렇게 선생님의 아이에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2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1. 그날 배운 수업 내용에 대한 글을 쓴다.

2. BigThink라는 사이트에서 매일 10분씩 기사를 읽는다.



 예정 면담시간인 15분이 되어 우리는 면담을 마치고 나왔는데 선생님 극본, 아이 주인공인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본 기분이다.

나와서 생각해 보니, 부모인 우리가 한 말이라고 첫인사 Good afternoon과 마지막 Thank you very much 가 다이다.

그 나머지 시간들은 선생님과 아이의 대화, 특히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아이가 그 과목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점, 부족한 부분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은 아이가 놓친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세심한 조언으로 마무리.


완전 이과형인 아이에게 영어는 넘어야 할 너무나 커다란 산과 같았다.

예전에 아이는 에세이 하나 쓰려면 깊은 한숨을 몇 번씩이나 내뱉으며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가..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학교로 전학 오면서 하필 영어 과목에서 이리 좋은 영어 선생님을 만나게 되다니

이 녀석 억수로 운이 좋은 녀석이다.


이 글을 쓰면서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다.

너는 영어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무심하게 대답한다.

아이는 잘 모르겠지.

영어 선생님이 알려주신 주옥같은 2개의 조언도 아이가 이행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니 옆에 보석 같은 선생님이 계셔도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

엄마는 이제 좀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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