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ChoiceIsMine Sep 02. 2023

[라오스 일상] 다 사람 사는 곳이랍니다.

그제 밤늦게 이제는 작아진 막내가 타던 자전거를 라오스 외국인들이 많이 보는 온라인 중고장터에 올리고

어제 아침 일찍 한 분이 사겠다고 연락을 해와 5시 반에 우리 집에 와서 자전거를 받아가기로 약속을 했다.


라오스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공산품이 거의 없어 대부분 수입하는 상황이니

수입품은 인근 태국이라 베트남, 아니면 때로는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비쌀 때가 있고

무엇보다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외국인들 사이의 중고 물품 매매가 꽤나 성황이다.

그래서 우리도 작년 처음에 왔을 때는 그 사이트를 자주 들락날락거렸었더랬다.



구매자가 오기로 한 5시 반이 되었는데... 연락이 없다.

안 오는 건가? 

6시까지 기다리다가 "안 오는 거니?" 하고 메시지를 보내니,

"미안, 내가 오늘 이사하는 날이라서 정신이 없었어. 지금 가는 길이야"

한다.

저녁을 다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

전기가 왔다 갔다 하더니

정전이 되고 만다.

아 덥다.

항상 에어컨을 켜고 있다가 정전으로 에어컨이 꺼지고 덩달아 물까지 안 나오니

땀이 나면서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후덥지근해 집에 있기가 힘들어진다.


드디어 구매자가 왔는데, 30-40대의 흑인 남자다.

"미안해. 우리가 라오스 온 지 얼마 안 돼서 오늘 이사를 하는 날이야. 그래서 늦었어. 

그리고 길도 잘 못 찾았어. 진짜 너무 미안해"

자전거를 유심히 보더니, "우리 아이에게 맞을 것 같아."

하면서 두툼한 지갑에서 100달러짜리를 준다.

그런데 우리는 마침 달러 잔돈이 없었다. 그래서 돈을 어떻게 주나... 의논이 시작되었다. 

보통 이런 경우, 계좌이체를 하는데

"우리 오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어, 금방 인터넷 뱅킹이 될 거야"하길래

"아니야. 그렇지 않아. 통장은 당일 받을 수 있어도 신용카드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이때 이 친구 살짝 놀라면서

"내 와이프가 OOOO(UN 산하 국제기구)에서 일해서 금방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거랑 무신 상관인가?

원래 이 나라는 그런 과정이 4-5일 걸리는 걸.


"그런데, 여기 왜 이래?" 

두리번두리번 동네를 돌아보며 왜 정전이 된 거냐고 물어보길래

"요즘 좀 정전이 많이 되네"라고 대답을 해 준다.

한 동안 안 그러더니 요즘 정전이 잦다. Kip 이 올라가기 시작하던 그 시기와 비슷하게 정전도 잦아진 것 같다.

물론 정전이 하루, 이틀 이렇게 길게 가지는 않는다. 

보통 한, 두 시간이면 전기가 돌아오곤 하지만, 

워낙 더운 나라다 보니 전기가 잠깐이라도 없으면 전기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럼, 달러 말고 그냥 Kip으로 줘."라고 얘기하면서

달러-킵 환율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오늘 공시된 달러 환율은 19,680 kip이고 구매자는 은행에서 환전을 했으니 그 환율로 알고 있었고

블랙마켓에서는 그것보다 10% 이상은 더 쳐주는 것 같다.

"우리가 일 년 전 왔을 때는 16000 정도였는데, 그 사이에 2만이 넘었어. 요사이에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했더니 "그렇구나, 몰랐어"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본 기사 중 하나가,

태국 한 온라인 매체가 급격히 오르는 라오스킵을 빗대어 "라오스 킵은 쓰레기 같은 돈이다"라고 놀렸는데,

화를 낼 줄 알았던 라오스 인들의 반응이 의외이다.

몇천 개의 "좋아요"와 "축하합니다"가 1등 댓글로, 라오스 인들의 자조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한 달간, 4000 kip, 26%가 상승했다. by Google Finance


5년간 통계를 보면, 약 4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요 1년 사이에 131.56% 상승을 보인다. by Google Finance


거래를 잘 마무리하고, 

구매자는 어제 렌트한 차에서 한참 지도를 보다가 드디어 집을 찾아 출발을 했고

우리도 에어컨이 있는 곳을 찾아 밤마실을 나오는데,

월드컵 때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넣으면 들리는 그런 함성이 어디선가 들리더니

우리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텅 텅 텅" 소리를 내며 전기가 들어오고 길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구매자님,

아이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다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오스 신입인 구매자님에게 너무 겁을 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필 정전이 된 날 오셔 가지고...

하지만, 구매자님도 보셨다시피

전기가 이렇게 들어오지 않습니까?

이곳도 

모두

사람 사는 곳이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3년 여름] 우리 어머님은 센스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