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화두, 재테크
재테크는 평생의 화두인 듯하다.
친밀해지기 전에는 미용실, 날씨, 음식 같은 가벼운 얘기를 나누다가, 많이 친해지고 이제는 나를 오픈해도 되겠다고 느끼는 분에게, 또는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 나의 경제 상태나 재테크를 공유해도 받아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야 슬쩍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한 분이 거의 처음 함께 밥 먹는 자리에서 내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본인의 깊은 재테크 이야기를 너무 훅 하고 오픈하셔서 살짝 당황한 일이 있다.
본인의 주식투자 앱을 열어 빨간색 천지인 계좌를 보여주며 최근 수익을 슬쩍 알려주기까지 하시는데 어마어마하다. 이분의 월급이 적은 편이 아닌데, 그 외에도 이렇게 돈이 저절로 쌓이면 그 많은 돈 다 어디다 쓰시려나...
이 분은 주린이인 나에게 먼저, CMA 계좌를 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공모주'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이 분에 따르면 공모주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단다.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서울대 갈지, 아니면 대학을 못 갈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엄마아빠를 보면 말이다.
엄마, 아빠가 서울대 나오면 아무래도 자식이 서울대 갈 확률이 크지 않니?
공모주도 그와 같다며,
오늘 CMA 계좌를 열고, 곧 열리는 ㅇㅇㅇㅇㅇㅇ 공모주를 신청하라는 것이다.
마침 잠시 바쁜 일이 있었고
약 15년 전쯤 안전하며 수익률이 높기로 신문마다 기사가 났던 유명 펀드를 사서
제대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올린 후 다시 주식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기에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났다.
ㅇㅇㅇㅇㅇㅇ 공모주 청약 제대로 터졌다!
자그마치 150만 명이 넘게 청약하여 30조 원이 넘는 개인자금이 몰렸다고 한다.
나만 모르고 사람들은 서울대 갈 아기를 잘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다시 이 분과의 식사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놀랍게도 '카지노'였다.
카지노와 주식의 성격이 아주 비슷하다며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 돈을 벌지만
자제력을 잃는 바로 그때, 돈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보는 재미로 이 분은 카지노로 자주 가신다는 것이다.
허걱
다음 날, 낮 11시에 나는 이 분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날 카지노에서 밤늦게까지 계셨단다.
주식을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무지한 자를 일깨워야겠다는 신념에서부터 나온 열정으로 똘똘 뭉쳐 설명하시던 분이
전날 카지노로 인한 밤샘으로 한참 일할 낮 시간에 정신 못 차리고 좀비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이
극한 대조를 이룬다...
생각해 보면
돈이라는 녀석은 너무나 쉽게 들어오면, 그만큼 쉽게 나가버리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주식이라는 활동으로 일해서 버는 월급만큼, 또는 그 이상을 벌어들일 때
노동의 가치는 그만큼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물론 안 그런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 강한 멘털의 소유자인 경우?)
나는, 돈이 돈을 벌어주어 지갑이 두툼해지는 것보다
일하는 시간 자체를 감사히 여기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날 때 눈이 반짝반짝해지며
나 자신이 성장하고 두툼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언제까지 이럴지는 나도 장담은 못하겠다.
언젠가 제대로 서울대 갈 녀석, 아니지.. 하버드 갈 녀석까지 찰떡같이 알아챌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