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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Aug 06. 2023

[2023년 여름] 우리 어머님은 센스쟁이

영국에서 공부 중인 첫째가 이번 여름방학 두 달 동안 한국의 한 대학교 연구소에서 인턴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지낼 기숙사가 다른 인턴쉽 학생들보다 외따로 뚝 떨어진 곳에 배정되어 학교 가는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어디를 가거나 무언가를 사려고 해도 접근성이 꽤나 떨어진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아이의 식사였다.

영국의 기숙사는 냉장고도 있고, 층마다 부엌이 있어 간단히 요리도 하고 동기들, 친구들과 기숙사나 식당에서 사 먹기도 해서 한시름 덜었는데

이 기숙사는 냉장고와 부엌이 없고 층마다 전자레인지가 있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요리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숙사 일층에 식당이 있고 음식도 괜찮다지만, 

삼시 세 끼를 사 먹기는 귀찮기도 하고 경제적 부담도 조금 있고.. 뭐 그러했던 것 같다. 

인턴쉽 시작하고 얼마 안 되던 어느 날... 저녁 7시쯤 아이와 통화를 하는데, 다음날  아침 먹을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간다는데 불빛도 별로 없고 인적도 없는 길을 한 15분 걷는다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며 영상통화로 바로 변경하여 아이의 저녁 산책을 함께 한 적이 있다.


둘째, 셋째의 학교도 드디어 방학을 해서 우리도 한국에 들어가서 첫째와 상봉하였다.

생각보다 얼굴이 훤해서 다행이었다. 굶고 다니지는 않았나 보다.

외식을 해도 좋겠지만 그동안 엄마 밥 못해준 것이 생각나서 집밥으로 가능한 해서 먹이고

비가 아주 많이 와서 기차마저 다니지 않던 한 주말은 반찬과 먹을 것을 차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빗길을 달려 인턴쉽하는 학교로 내려가서 기숙사 근처에 부엌 있는 방을 하나 잡고 아이와 밥 해 먹고 시원한 맥주도 같이 마시며 주말을 지냈다.

돌아올 때는 큰 마트에 들러 아이에게 햇반, 도시락김, 참치캔 몇 개씩과 밑반찬 조금씩을 들려 보냈다.

그렇게 짧은 한국 휴가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라오스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또 밥걱정이다.

전화할 때마다

"저녁 먹었니?"

"오늘은 뭐 먹었니?"

라고 똑같이 물어보는 나를 보자니... 

입장 바꿔 아이라면 좀 지루하겠어서 가능하면 많이는 안 물어보려고 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오후에 어머님과 전화를 하는데

어머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만드신 떡을 아이에게 어제 아이스팩 가득 넣어 택배로 보내셨고

오늘은 양념통닭을 배달시키셨다는 것이다.

"어머님, 저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어요. 감사합니다"

하며 전화를 끊고

아이에게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전자레인지 앞에서 양념통닭을 데우고 있다.

다 데운 양념통닭을 보여주는데 꽤나 맛있어 보인다.

아이와 나는 이런 상황이 재밌어 영상통화를 하며

막 웃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근데 너 칼이 없어서 오이도 못 깎아먹잖아?"

했더니

"할머니가 과도도 같이 보내주셨어요" 하는 것이다.

우리 어머님 정말 대박이다.


이번 여름에 어머님댁에 가니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 오는 인터넷 쇼핑에 재미를 들이셔서 이것저것 잘도 시키시더니

이제는 멀리 있는 손녀에게 직접 키운 야채, 떡과 양념통닭까지 보내주시는 센스~~


대학생이 되어서 

본인은 다 컸다고 생각하겠지만

또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아

옆에서 챙겨주고 싶은데 해외에 있다 보니 그런 것이 마음뿐이다.

그런데

엄마아빠가 해외 있어도

한국에서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정을 듬뿍 느꼈을 생각에 내 마음이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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