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울 나들이 갈 생각에 분주하다. 오늘은 멋을 부리고 싶었다. 왠지 인사동에 가면 젊은 나를 만날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옷장을 열어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다. 남편도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을 선택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연애 때 추억이 떠오르며 행복바이러스가 온 집안을 감쌌다. 아이가 뛰어온다. 아이는 손에 잡히는 바람막이를 입었다. 부지런을 떤 덕분에 차가 막히지 않고 금방 인사동에 도착했다. 인사동은 여전히 한국의 미를 자랑하며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인해 부채를 꼭 사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눈이 바쁘게 움직인다. 마음에 드는 부채를 찾느라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날씨도 우리가 오는 것을 반기며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길을 걷던 아이가 소리를 치며 뛰어온다.
“엄마 아빠 이리 좀 와 보세요.”
우리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한 가게 앞에 섰다. ‘KIJUNG ART’ 남편 이름 가게다. 장난기 많은 남편은 자신의 가게를 소개한다며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작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가 또 소리를 지른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이 곁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실타래를 만드는 곳에 서있었다.
“엄마 아빠 정말 신기해요.”
“엄마 아빠 연애 때 인사동에 오면 꼭 사 먹었었어. 하나 사자.”
아이는 실타래 만드는 과정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관찰 중이다. 많은 사람들 덕분에 아이는 오랫동안 실타래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서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실타래를 받았다. 이제 시식을 해볼 차례다. 남편이 크게 입을 벌리고 맛을 본다.
“와 예전과 똑같다.”
남편은 아이에게 얼른 먹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실타래를 먹어본 사람들은 알 거다. 입안에 붙어버려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아이와 나도 하나를 집어서 입 속으로 넣었다. 아이는 입안의 촉감이 별로였는지 입 속에 넣자 마다 뱉어버렸다. 우리는 웃느라 정신없었다. 아이는 생각했던 맛이 아니라서 실망한 눈치다.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르듯 아이에게는 별로였나 보다.
인사동 하면 쌈지길. 예쁜 액세서리들이 많아 쇼핑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아이도 쌈지길 입구에서부터 신났다.
“엄마, 때수건으로 꾸몄어요. 정말 웃겨요.”
“어머, 정말 때수건으로 꾸몄네. 재밌다. 엄마 아빠 데이트할 때도 무엇으로 장식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는 않네.그때도 정말 웃겼던 것 같아. 이곳에서 사진 찍자.”
남편은 카메라를 꺼내서 모녀의 사진을 멋지게 찍어 주었다. 다리도 길게 나오고 날씬하다.
“오늘 사진사분 일당 더 챙겨드려야겠어요.”
“네네 사모님 다시 서보시죠.”
그렇게 우린 상황극도 하며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쌈지길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와 함께 구경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직접 만든 공예품 앞에 서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다. 펜던트가 마음에 드는지 나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사도 되냐고 묻는 듯하다. 나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펜던트를 손에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피큐어들이 있었다. 신기한 점을 발견한 나는 사장님께 다가가 물어본다.
“사장님, 피큐어들 눈 , 코, 입이 왜 없어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다르잖아요. 각자 상상하며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저는 눈, 코, 입을 그리지 않아요.”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작가들의 창의력에 감동받는 순간이다. 한 작품 앞에 멈췄다. 사진 속의 가족들은 똑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같은 미소를 지어본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이번에 아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미니어처 가게다. 아기자기한 소품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장식품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결심한 듯 나의 손을 끌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던 모녀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깜짝 놀라 달려왔다.
“왜 무슨 일이야?”
“자기야, 저것 봐. 한국의 미가 느껴지는 책갈피 너무 예쁘지?”
“아빠, 정말 멋지죠.”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우리 모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남편의 눈빛을 무시하고 1초의 고민도 없이 구입했다. 그렇게 걷다가 사고 싶은 장식품을 발견했다. 바로 미니 가야금 액자다. 취미로 가야금을 배운 지 벌써 8년째다. 처음 가야금 소리를 듣고 반해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지 상상도 못 했다. 덕분에 아이도 아리랑 외 3곡 정도는 연주할 실력이 되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며 한참을 서서 보고 있었다.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다음을 기약하며 조용히 가게 문을 닫고 나왔다.
점점 올라가자 쌈지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서 볼 때보다 훨씬 멋지다. 이곳은 10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커다란 플래카드의 글자가 내 가슴에 조용히 들어온다.
‘피어나라 BLOOM’
둘이 왔던 곳을 아이와 함께 셋이서 오니 아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더 많다. 아이도 즐거웠는지 우리를 꼭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