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거의 매일 통화한다. 저녁 메뉴를 함께 고민하고, 아이들의 교육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도 연결된 채 숨을 쉰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J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낮고, 무겁고, 어딘가 젖어 있었다.
"벌써 회식 끝났어?"
J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깊은 한숨만이 들려왔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짧은 문장이 돌아왔다.
"회식 안 갔어."
"왜? 첫 회식참석이라고 설레했잖아."
J는 말을 고르듯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첫 회식참석이었는데 회식 시간이 애매하게 잡혔어. 여섯 시 반 시작에 식사 시간은 120분이래. 근데 원장은 '시간을 끌어보겠지만 오래 있을 수 없다'며 참석 여부를 나보고 결정하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나는 거 있지. 그래서 참석 안하겠다고 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1년 동안 함께 일했는데 이렇게 배려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운했어."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정 앞에서 J는 오래 서 있었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마음은 분명히 무거워 보였다.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안다.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아프게 하는 순간은 늘 이렇게 사소한 말에서 시작된다.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선생님, 어떡하죠. 예약한 곳이 하필이면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늦더라도 꼭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우리 2차는 더 맛있는 대로 가요.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황, 같은 조건이었더라도 마음이 덜 다치지 않았을까. 말 한마디의 방향이 관계의 온도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으면서도 자주 잊는다.
요즘은 말을 건네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어떻게 말해야 상처가 덜 될지 어떤 표현이 상대를 존중하는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최근 챗GPT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대화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보다 메시지와 채팅으로 감정을 주고받는데 익숙해졌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만큼 온기는 줄어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함께 밥을 먹은 사람들의 관계가 더 돈독하는 통계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음식을 나누고, 웃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J의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가벼운 일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작은 말들로 매일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말은 칼이 될 수도, 손이 될 수도 있다. 무심한 한 문장은 오래 남고, 다정한 한마디는 하루를 견디게 한다.
조금도 다정하게 말하기 위해 우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바로 말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연습말이다. 이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한다는 것은 실수를 줄이는 일이고, 나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일이다. 관계를 지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은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춰본다..
그리고 묻는다, 이 말은 다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