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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두 시간의 설렘

by 정미숙

ㅣ눈이 와요.


카톡 알람이 울렸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저녁 6시쯤부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머님댁 수리할 게 있다며 퇴근하자마자 바로 본가로 향했다. 차가 막혀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첫눈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덕분에 각자의 바라본 첫눈을 구경하며 호사를 누렸다. 나도 바꿔볼까 싶어 가족 톡방에 글을 남겼다.


ㅣ밖에 있는 사람 첫눈 사진 찍어주세요!


잠시 후 카톡 알람이 울렸다. 사춘기 딸의 감성이 가득 담긴 사진이 도착했다. 스마일과 하트.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가 밟지 않은 눈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찍었을 딸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났다. 사춘기라 말이 짧아지고, 감정기복이 심하지만, 사진 속의 감성은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바로 프로필을 바꿨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멈춤의 시간'을 선물한다. 첫눈이 내리자,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 내리는 모습을 본다. 바쁜 일상을 챗바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첫눈을 핑계 삼아 약속을 잡으며 걷기도 하고,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내일 반납해도 되는 책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걸을 때마다 눈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칼바람에 겨울이 시작된 걸 실감한다. 거리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성화에 이끌려 나온 가족이 보였다. 엄마 아빠의 표정은 지쳐 보였지만, 아이들은 세상 해맑다. 조금이라도 쌓인 눈이 보이면 뭉치고, 누군가 밟지 않은 곳만 보면 냅다 뛰어가 밟으며 까르르 웃는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눈'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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