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란, 우정이란
1년에 한 번, 1박 2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오랫동안 편안했던 사이인데, 어느 순간부터 묘하게 불편해졌다는 걸 느꼈다. 이유를 단번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달라졌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일정을 공유해도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을 때, 각자의 사정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 때, 나는 괜히 혼자 서운해지곤 했다. 바빠서였을까, 아니면 예전만큼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들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관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기대가 쌓인다. 하지만 기대는 때로 설명되지 않으면 오해가 된다. 누군가는 서운했고, 누군가는 부담을 느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일에 매달리고, 가까이에 있는 관계들을 돌보느라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마음을 길게 나누는 일이 쉽지 않았다. 드라마 속 친구들처럼 허물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현실은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단단해진 모양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도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색함은 잠깐 스쳤고, 대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이어졌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시간을 지나오며 단단해져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친구란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때로는 서운함이 스쳐도, 다시 돌아가 앉을 수 있는 자리 같은 관계다. 완벽하게 맞지 않아도, 아주 끊어지지는 않는 사이다.
이번 만남이 특별히 화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맛있는 것을 먹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내년에 또 보자”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 충분히 애썼다.
청량리에서 새벽 6시 16분 KTX를 타고 내려가 3시에 헤어진 짧은 7시간. 길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우정이란 어쩌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서로의 안녕을 조용히 바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또 한 해를 살아낼 것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