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온도

여행지에서 마주한 K-아이들의 하루

by 정미숙

호텔 라운지 앉아 있으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어제 슬로프의 경사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질주하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난감해하고 있다. 그 곁에는 연휴 동안 아이의 학습 습관이 흐트러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단단한 표정의 엄마가 있다.


정적을 깨는 것은 아이들의 깊은 한숨과 엄마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뿐이다. 숙제를 끝내야만 다음 즐거움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아이들의 탄식은 길게 이어졌다. 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매일의 성실함으로 습관을 다지는 일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저 아이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세간에서 말하는 의대일까, 혹은 그 너머의 무엇일까. 부모가 아이의 올바른 습관을 잡아주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조금만 더 다정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친절한 목소리로, 혹은 많은 양의 숙제를 조금씩 나누어 제안했더라면 아이와 부모 모두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키를 탈 때와 공부를 할 때의 아이는 분명 같은 아이였다. 그러나 그 얼굴에 어린 '행복의 온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이는 비단 아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시켜야만 하는 엄마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엄마의 온도 역시 같을 리 없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적막을 깬다.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하던 엄마의 입에서 "다시"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 마음도 함께 무거워진다. 이것이 오늘날 'K-아이들'이 마주한 서글픈 초상이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얼음 위에서는 뜨거웠던 아이들이, 따뜻한 라운지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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