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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Nov 28. 2022

따뜻한 말 한마디와 다정한 눈빛

그리운 외할머니

할머니, 잘 계시죠? 올겨울 유난히 추웠는데 감기는 안 걸리셨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내 편이셨던 할머니. 어릴 적부터 유난히 저를 예뻐해 주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할머니가 맛있는 밥을 차려주시면 밥 한 그릇 뚝딱하고 부뚜막에 올라가 설거지를 하던 어린 아이. 그때마다 할머니는 행복한 미소로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죠. 할머니는 제가 뭐만 하면 좋아하시고 재밌다고 하셨던 거 기억나세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면 어쩜 저리도 이야기를 잘할꼬 하며 기특해하셨죠. 그때 할머니가 보여주셨던 다정한 눈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중학교 때는 할머니가 장사하는 시장에 매일 갔어요. 할머니 옆에 앉아 야채도 팔고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은 지각한 저에게 선생님이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며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죠. 속상해하는 저를 보며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우리 손녀는 큰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될 건데. 선생님이 모르셨구나.” 하셨죠. 그때부터 저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힘든 사람을 보면 할머니에게 배운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근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는 잊어버렸지 뭐예요. 할머니가 저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들을. 그저 삶이 바빠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갔어요. 그 덕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했죠.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나 가난한 사람이라 신혼 초에는 힘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었기에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2년 후엔 우리가 계획한 대로 아이도 생겼어요. 근데 할머니, 인생은 제 뜻대로 대지 않더라고요.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슬픈 일이 벌어졌어요. 제가 병에 걸렸지 뭐예요. 힘들어하는   의사 선생님은 제가 우울증이 올까 봐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하셨어요.




어린아이 때문에 전 살아야 했어요. 그리고 매일 저와 싸워야 했죠. 건강이 무너지자 삶도 무너졌지만 할머니의 손녀여서일까요 저는 나름대로 일어서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리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달렸어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만 행복할 미래를 꿈꾸며 참고 또 참았답니다. 그렇게 2년을 버티고 다시 세 식구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하늘에서 다 보고 계셨던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때 저는 깨달았어요. 제 곁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요. 10년 전의 일이다 보니 잊힌 부분들도 있지만 그때 느꼈던 감사한 마음들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기록했던 흔적들이 저를 일어서게 했어요.




 아이가 학교를 입학할 때는 저도 함께 대학에 편입했어요.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보냈던 시간들. 아이도 공부하는 엄마가 좋은지 엄마가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며 편지를 써 주더라고요. 그렇게 졸업을 했어요. 근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일상이 무너져버렸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낄 때 신은 또 저를 무너뜨리더라고요. 아이가 아팠어요. 그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내가 또 욕심을 부렸구나 내가 또 자만했구나 오랜 시간 자책할 수는 없었고 저는 다시 단단해져야 했어요. 병원을 알아보고 아이를 돌봐야 했죠. 아이를 업고 화장실로 방으로 옮겨 다니며 식단 조절을 할 때 저의 몸은 아주 예민해 있었어요. 무너지는 남편의 마음을 다잡아주며 함께 한 달을 버텼고, 가장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1년이 지나자 아이는 다시 건강해졌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너무나 보고 싶은 할머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거겠죠. 예측 못한 일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거겠죠. 저도 이제는 철없는 아이가 아닌 조금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어요. 할머니에게 배운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오늘은 유난히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힘든 시절 시장에서 어렵게 번 돈으로 저를 대학에 보내주셨던 할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저는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엄마가 되고 보니 부모의 사랑, 할머니의 사랑이 살면서 힘든 순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를 내 품 안에 안으며 맹세했어요. ‘사랑하는 아가야,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으로 자라렴.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해.’ 그렇게 자란 아이는 사랑이 넘쳐나요.  언제나 할머니는 제 안에 함께  계세요. 할머니 그곳에서 친구분들과 많이 행복하세요.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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