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N잡러가 대세다. 함께 활동하는 선생님들도 2~3가지 직업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다양성 수업을 하던 날 오랜만에 구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주말에 역사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정선생님, 이번 주 수원 화성에서 해설 있는데 아이랑 함께 와서 들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내가 많은 곳에서 수업을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이에요.”
“선생님이 강력추천하시니 꼭 가고 싶어 지는데요. 아이에게 물어볼게요. 요즘 사춘기라 꼭 물어봐야 한답니다.”
“그래요. 안되면 혼자라도 와서 듣고 아이에게 설명해 줘요.”
그렇게 구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듣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6시 30분 연무대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많은 가족들이 보인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구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서 뵈니 더 반가운 대요.”
“어서 오세요. 차는 안 막혔어요? 네가 겨울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네. 일찍 출발해서 괜찮았어요."
"오늘 함께 할 팀은 정선생님까지 포함한 6팀, 총인원은 13명입니다. 이 수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신청해야만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만, 어른만은 신청할 수 없답니다. 자, 마지막 가족이 오면 바로 출발할게요.”
학교에서 보던 선생님과 사뭇 달라 보인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안녕하세요, 오늘 해설을 맡은 구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선생님을 잘 따라와 주고, 어른들은 뒤에서 천천히 걸어와 주세요. 우리는 연무대에서 장안문까지 갈 겁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우리는 부지런히 따라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수원화성은 나와 일치하는 것이 두 가지다. 첫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1978년에 만들어졌다. 내가 태어난 해다.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1997년에 지정되었다. 나와 학번이 같다.
수원화성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까. 복원한 건물은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 수원화성은 <화성성역의궤>에 모든 기록이 정밀하게 적혀 있다. 정말 똑같은지 확인 차 방문했던 사람들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자세한 기록 덕분에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기록은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실력 부족으로 사진에 담기지 않네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성벽을 걸어가자, 점점 어두워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겨울이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엄마, 저것 봐. 너무 아름답다.”
엄마와 딸의 눈은 선셋에, 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강력 추천을 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와 함께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풍경을 찍어본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멋진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을 고스란히 눈에, 가슴에 담았다. 잠시나마 조선시대에 와 있는 상상을 해본다.
수원 화성을 ‘성곽의 꽃’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수원화성이 완공된 뒤 정조가 방문했을 때 신하 중 한 명이 질문을 했다.
“목숨 걸고 적과 싸워야 하는 성을 왜 이토록 아름답게 짓습니까?”
신하의 물음에 정조대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움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가 꺾이므로 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깊은 생각을 했다니 정말 놀랍다. 사람도 이와 같이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어떤 것을 느꼈을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아이도 가슴 한편에 울림이 있었겠지.
다시 장안문에서 연무대까지는 돌아올 때는 8시 반이 넘어 성벽이 아닌 도로를 걸어왔다.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와 퀴즈를 내며 본 것을 다시 떠올려 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근처에 있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모녀의 데이트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