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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동

네가 있어야 할 곳

by 정미숙



평온한 저녁시간 아이가 침묵을 깨고 다가와 묻는다.

“엄마, 우리 8시에 산책 갈까요?”

“산책 좋지.”

아이가 먼저 무언가를 제시할 때면 무릎을 치며 환영한다. 아이와 산책할 때 좋은 점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요즘 관심 있는 굿즈 이야기를 하며 30분을 걸었다. 공차에 들러 블랙사파이어 쥬얼리 밀크티를 사서 먹으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무한 반복했다. 한 시간을 걸었더니 땀이 흘러 옷이 젖었다. 씻으러 들어가던 아이가 다급하게 부른다.

“엄마, 엄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이가 있는 방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엄마 따가워요. 탑브래지어에 벌레가 있는 것 같아요?”

탑브래지어 안에 무슨 벌레가 있다고 이렇게 요란스러운가 싶다. 머리카락이겠지 하며 요리조리 살펴본다. 역시 생각대로 없다. 그럼 그렇지 하며 한번 더 확인해 본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큼 되는 벌레가 있다.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심호흡을 하고 벌레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혹여 도망갈까 싶어 재빠르게 다른 손을 동그랗게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빠른 속도로 휴지를 뜯어 벌레를 꾹 눌렀다. 죽었겠지 하며 살짝 휴지를 펼쳐본다. 벌레의 움직임에 놀라 나도 모르게 휴지를 비튼 후 변기에 버리고 뚜껑을 닫았다. 물을 내린 후 천천히 변기 뚜껑을 열어본다. 없다.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아이의 소리가 또 들린다.

“세상에서 벌레가 제일 싫어. 왜 하필 거기에 들어간 거야."

또 벌레가 있을까 싶은지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다가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많이 놀랐지? 엄마가 다시 살펴볼게."

아이가 운다. 그 순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안아주며 토닥여본다.

한참을 울고 난 아이가 말을 한다.

"등에 뭔가 있는지 따가운 거야 그래서 손을 뒤로해서 만져보는데 뭐가 잡혔어. 그리고."

아이가 말을 잇지 못한다.

"뭔가 느리게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데 소름이 확 끼치는 거야.”

아이가 다시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다시 벌레가 있는지 살펴봐 달라고 한다. 몇 번을 반복한 후,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이와 같은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났다면 나는 아이보다 더 난리를 쳤을 거다. 세상에서 벌레가 제일 싫은 1인이 바로 나다. 신기한 것은 절대 못 잡을 것 같던 벌레를 엄마가 되자, 아닌 척 참고 잡아서 처리했다는 거다. 조금 전 벌레를 잡았을 때가 자꾸만 떠오른다. 몸통을 잡았을 때 바둥거리던 다리들. 죽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서 움직이던 녀석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씻고 나온 아이는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잠자리를 챙기려고 복도를 가던 중 까만 단추가 보였다.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또 벌레다. 창문을 열어두어서일까. 아님 아까 같이 들어온 녀석의 형제일까. 아이가 볼까 싶어 얼른 휴지를 가져와 감쌌다. 다시 한번 벌레를 죽이고 변기에 넣었다. 왜 벌레가 우리 집에 온 걸까. 궁금증만 가득하다.


“엄마, 아까 벌레 때문에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요. 엄마랑 함께 자고 싶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

“엄마, 아까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얼마나 놀랐을까.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었으니.”

“엄마는 안 무서웠어요?”

“엄마? 실은 엄청 무서웠어. 엄마도 벌레는 딱 싫거든. 엄지와 검지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지. 엄마가 안 잡으면 우리 겨울이가 놀라니깐.”

“엄마 잘했어요.”


“근데 엄마 벌레가 왜 하필 거기에 있었을까요?”

"글쎄. 벌레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아이도 고개만 갸우뚱할 뿐 답을 찾지 못했다.

아까 그 벌레는 호기심 대장일 거야. 엄마가 만나면 꼭 말해줄게. 벌레야 앞으로는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 그 끝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어.”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다음부터는 안 따라오겠다고 약속해 줘.” 하며 핑클 노래에 맞춰 새끼손가락을 올려 보여준다. 아이가 재밌다며 큰 소리로 웃는다. 다행이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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