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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녁주 Apr 09. 2020

톱의 무게만큼


스탠다드에이의 가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의 섬세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서랍간의 간격을 맞추거나 테이블 상판과 다리를 조립하기 위해서 철물을 고정하거나, 소파 등받이를 고정한 후 샌딩을 한다거나 등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히 임해야 선이 아름다운 가구가 눈앞에 모습을 보인다.


11월의 어느 날, 소파 등받이를 고정하고 있을 때였다. 일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민 선배(지민이를 부르는 내 애칭)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톱의 무게만큼 들어야 잘 될걸?"


"그게 뭐야, 민 선배."


민 선배는 10년 차 목수다. 무시무시한 경력을 가진 그는 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찐 목수다. 마치 하이큐에 나오는 카라스노의 리베로 노야상 같은 이미지랄까. 새로이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구를 빼면 죽은 동태 눈을 하고, 나무 얘기를 하면 그 누구보다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다.


"아니, 그러니까 톱의 무게만큼 들라고-"


" 그게 뭔데! 말이 너무 어려워."


두 사람의 공방은 끝없이 이어졌다. 2년 차 목수인 나는 톱의 무게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고, 왜 톱의 무게만큼 들어야 하며, 그에 맞는 힘의 수치를 모르기에 민 선배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파 등받이와 소파 몸체를 연결하기 위해 못을 박고 남은 공간에 목다보을 넣고 삐져나온 부분을 톱으로 잘라낼 때마다 매번 등받이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상처를 낸 순간 등받이를 다시 한번 샌딩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두 번 하는 꼴이 되고 만다. 우연히 그 모습을 민 선배가 보고 한 말이 톱의 무게만큼 들라는 거였다.


"많이 움직이지 말고, 처음부터 당기면서 들어가야지. 톱을 당길 때만 힘을 주고!"


선배의 입은 모터 달린 거마냥 우다 다다 하고 떠들어댔다. 입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며 쳐다볼 때,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자신의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신나게 얘기하는 목수는 거의 없다. 자신만의 방법을 감추기 급급한 좁은 이 세계에서 그는 보석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선배는 나무를 만지고 가구를 만들 때, 혹은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 중 하나다.


'꼭 성공하자 선배!'


스윽, 스윽.


"아 드디어 됐다! 이거 말한 거구나."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등받이에 상처를 내지 않고 톱으로 목다보를 자를 수 있었다. 톱의 무게란 생각보다 가벼웠고, 힘보단 리듬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등받이에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톱을 살짝 구부려야 했고, 톱질의 이동 거리를 짧게 가져가야 했으므로.)


"좋은 글감 줘서 고마워."

"?"


무사히 소파 등받이를 조립하고 나서야 톱의 무게만큼 힘을 주라는 말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적당히 힘을 주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구마다 필요한 힘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 맞지 않는 넘치는 힘을 주면 가구가 상처를 입고, 그보다 적은 힘을 주면 날이 들어가지 않는다. 민 선배의 10년 차 노하우를 단 10분 만에 흡수했지만 (이 정도면 손재주가 있다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으하하), 섬세한 손길을 조금 더 단련시킬 필요를 느꼈고, 그의 노하우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톱의 무게를 들었을까.


사람에게도 적당한 양의 말이 필요하다. 과하지 않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무게만큼의 말이.

말에 무게가 있어 그 무게를 잴 수 있다면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지금보단 조금 더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톱의 무게 만큼,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무게로 마음을 전한다면, 그 무게만큼 내가 원하는 정도에 알맞은 말을 돌려받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지금껏 그러지 못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몇몇 놓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와 달리, 내가 가진 말의 무게에 적합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함을 느낀다.


적당히란 말의 무게는 여전히 나에겐 어렵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건 상대방의 원하는 만큼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하며 서로가 원하는 말의 무게를 맞춰나가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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