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2회 차에 깨닫고 찾게 된 것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by 장성민쌤

며칠 전부터 이명이 시작됐다. 오른쪽 귀에서 울리는 냉장고 소리 같은 웅웅 소리. 수년 전 이미 한 차례 이명을 겪어봤기에 이번이 2 회차라고 할 수 있다. 불쾌하고 화가 났다.

1회 차 때는 강력한 빌런 두 명이 이명을 유발했었다. 이번에는 그 정도 레벨의 악마는 없다. 다만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한 여러 일들이 겹쳐서 다시 병이 생겼다는 게 생각할수록 기분 나빴다. 별 거 아닌데. 학년부 선생님들도 다 좋은데.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며 진료를 받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몇 가지를 깨닫고 찾게 되었다.


1. 다들 아프다.

이명이 이렇게 흔한 병이었나. 내가 아픈 건 백 퍼센트 학교 때문이다. 일부러 그래서 병원 가러 잠깐 나가는 사유에도 '이명 증상 진료'라고 명시하고 다녔다. 학교 때문에 아픈 거니까 산재 처리해 달라고...... 는 말 못 해도 적어도 알아는 달라고.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자신의 이명 증상 간증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이명보다 더 심각한 질환이라는 난청을 겪은 분들도 다수였다.

아니, 왜들 그렇게 아프신 거예요. 아픈데 어떻게 그냥 참고 다니신 건가요. 이렇게 불쾌하고 화가 나는데 어떻게 그렇게 웃으면서 학교 생활들을 잘하세요.

우리 동료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2.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았다.

드라마 <송곳>을 보면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장래희말을 적으라는 종이에 "꼰대"라고 쓰는 장면이 나온다. 낭중지추처럼 올곧아서 불의한 것을 그냥 보고 못 넘어가는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가 그저 그런 "꼰대"가 될 일은 결코 없을 터였다. 요 며칠 왠지 모르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의 장래희망을 쓴다면? 꼭 쓰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월급 루팡"


'2011년경부터 유행한 신조어로, 맡은 직무는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이나 축내는 직원을 말한다. 월급 도둑, 월급 벌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위키를 보니 이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도둑이나 벌레는 어감이 좋지 않으니, 루팡이 좋겠다. 다음은 나무위키에 이어지는 설명이다.


'태업이랑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태업은 고용주나 사회에 대한 불만과 항의가 목적인 경우도 있지만, 월급 루팡은 노동 쟁의 같은 목적성이 없고 소소하게 개인의 게으름 또는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즉 태업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안 하는 것이고 월급 루팡은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일을 못 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나한테는 월급 루팡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나의 모든 역할을 맡았다면 이명 따위 걸리지 않고도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나가지 않았을까.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일을 못 하는 것. 지금의 나와 같은 듯이, 같지 않다. 굉장히 미묘하거나 애매모호한 지점에 내가 서 있다. 이럴 바에야 시원하게 일 못하고 몸 건강한 월급 루팡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무위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나온다.


'학교에서는 연차가 많은 교사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교과서 대충 읽어주다가 중요한 부분에 밑줄만 그어주고 요약해서 설명하고 수업 끝낸 후 교실 뒤에서 막대기 같은 거 하나 주워다가 골프 치는 시늉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연차가 적은 교사들은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경향이 강하며 윗세대 교사들의 눈치도 봐야 하므로 월급 루팡 같은 것을 하지 못한다.'


오오. 감탄사가 나온다. 정말 완벽하게 나는 저 딱 중간에 있다. 작은 골프채를 둔기처럼 들고 다녔던 어떤 교사에 대한 반감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으면서도, 윗세대 교사들 눈치 보면서 막상 수업 준비는 또 열심히 안 하는 그런 아주 어중간한 그런 선생.


아이들한테 장기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내 미래도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았더니 내 미래의 비전은 지금 우리 학교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명도 학교 이름과 내 이름을 섞어 놓았다.

그런데도 나는 월급 루팡이 되고 싶다. 열심히 안 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다. 적게 벌더라도 아프고 싶지는 않다. 내 성격상 카카오톡 프로필에 당당하게 새롭게 찾은 내 장래희망을 적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내 주변 사람들이 적게 보는 브런치에 아주 오랜만에 가장 솔직한 내 정서와 태도를 혹은 마음가짐을 올려본다.


40대는 참 쉽지 않다. 오늘은 이사장님 스타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40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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