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불행대회 4

천석이 결혼하지 못한 이유

by 장성민쌤

잠깐의 침묵을 깨고 천석이 입을 열었다.
"다들 힘들게 사네. 나는 딱히 뭐 그렇게 힘든 건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러 왔으니 짧고, 굵게 이야기할게. 나는 있잖아."
모두가 천석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천석이 갑자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천석의 정수리에는 단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없었다. 좌중이 숙연해졌다.
"보시다시피 대머리 됐다. 내가 고등학교 때도 이마가 꽤 넓은 편이었잖아. 그래도 우리 아빠가 머리숱 많아서 걱정 안 했는데, 대학 졸업할 때 취업 준비하면서 한 움큼씩 빠지더라. 취직하고 나서 야근하고 스트레스받으니까 한 주먹씩 빠지더니 이렇게 된 지 몇 년 됐어. 일하느라 바빠서 연애고 뭐고 아무것도 못했는데, 결혼정보회사 등록하려고 했더니 대머리는 성사 안 된다고 안 받아주더라. 돈이 많아야 장가가려나 싶어서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보긴 했는데, 이제 틀렸지 뭐. 나이 사십이 훌쩍 넘은 대머린데. 장가가고 애 있는 친구들, 부럽다."
다들 쓴웃음을 짓고 있는 가운데 눈치 없는 현우가 물었다.
"야, 대머리는 한 대 걸러서 나오기도 한다던데, 할아버님이 대머리셨어?"
"나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서 사진으로만 봤는데, 대머리 아니셨거든. 아버지도 별말씀 없으셨고. 그런데 나 이렇게 되고 아버지한테 물어보니까 할아버지 대머리 맞았대. 영정사진은, 가발 쓴 거라고 하시더라고. 그때는 배신감에 치가 떨렸는데, 아버지 말이 '굳이 그런 걸 이야기해 줄 필요가 없었다'라고 하시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지. 그렇지 않냐? 뭐 어쨌거나 나는 우리 명문 최 씨 집안 대를 끊어놓게 생겼으니 그게 제일 죄송하지. 허허."
천석의 대답에 현우도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고, 분위기는 한껏 더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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