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 들었어? 지난번에 아기 낳고 출산 휴가 받았던 이 과장 있잖아. 한 달 쉬고 다시 출근했대!" "아휴. 뭐 그렇게까지 한 대. 독하다 독해" 퇴근하는 회사 버스 안에서 뒤에 앉은 누군가가 수군거렸다. 평소라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을 소리였다. 그날은 고요했던 내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는 말이었다.
남자친구와 혼담이 오가던 시기.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기는 낳겠다는 마음과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부딪혔다. 결혼해도 회사는 어떻게 다녀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산은 조금 더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내가 회사를 다녔던 7, 8년 전에는 육아 휴가를 챙기는 것은 얼토당토않았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으레 퇴사하는 것이 순서였다. 애 키운다고 회사를 그만둬도, 그간의 커리어가 아쉬워서 또는 여러 사정으로 일을 이어나가도 직장 동료들의 뒷담화 주인공이 되었다. 당장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심란해졌다.
나는 선택했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아이가 커가는 시간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가 점차 성장하면서 겪을 어려움과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선택으로 내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끝으로 더 이상 취업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삶이 달라지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이전에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게 될 고민일 게다. 출산 후의 내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진 않을까? 회사에서 쌓아 온 경력이 무(無)로 돌아갈 것인데, 후회하진 않을까? 여느 워킹맘처럼 일하고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걸 나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개발부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기를 낳기로 했다. 나는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알람이 울리면 당장 일어날 것인가와 같은 소소한 것부터 대학이나 결혼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까지 늘 고민하며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어떤 사건, 사고에 의한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내 선택에 의해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다. 누군가는 인생의 파도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선택의 조각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얼마나 고민했는지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서른 중반, 지금껏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출산이었다.
결심이 서자 제2의 인생을 계획하기로 했다. 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육아와 집안일만 하는 것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누구 엄마'로만 살기보다는 '나경'이라는 내 이름을 잊지 않으며 살고 싶었다.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블로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혼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하고, SNS가 뭔지도 몰랐던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물건을 팔며,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라 돈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확실한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두기 위해 전문자격증인 공인중개사도 공부해 보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애써보기로 했다.
아이가 4살이 된 지금,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땄지만 블로그는 아직까지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가 없다. 아이의 '간식 값' 정도 버는 수준이다. 그 코딱지만 한 수익은 내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하는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일 때문에 시간에 매여있지 않으니 아이에게 갑작스레 무슨 일이 생겨도 여유가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다쳤다고 연락이 오면 곧장 달려갈 수 있었다. 감기에 걸리면 돌봐줄 사람 찾을 걱정 없이 집에서 쉬게 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오늘은 어땠는지, 뭐 하고 놀았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보며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다시 취업을 할 생각이 있느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다시 취업하지 않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취업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은 단지 아이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낳겠다고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 출산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다. 직장을 다녔을 때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여전히 성장 중이다. 지금의 선택으로 내 삶이 어느 순간 꼭짓점에 도달한다면 그땐 또 다른 변곡점이 올 것이다. 그때도 나의 선택에 의해 변할 인생을 기대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