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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Feb 14. 2024

발렌타인 초콜릿을 주는 남자

초콜릿보다 나를 심쿵하게 한 것은.

 어제 가족 모임을 마치고 늦게 귀가했다. 늦잠을 잘 줄 알았던 도동이는 새벽부터 에너지가 넘치고, 덕분에 아침부터 우리 부부는 매우 피곤하다. 아침을 먹고 동그리가 잠시 커피를 사러 다녀온단다. 비도 오는데 무슨 커피를 사러 간담. 생각했지만 뭐. 그러려니.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였다. 들어오는 도동이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다. 현관에 나가니 도동이가 "엄마, 자! 까까!" 초콜릿을 건네준다. 그래, 이런 남자였다. 동그리. 발렌타인에도 초콜릿을 주는 남자. 살다 보면 서로의 소중함과 마음을 잊을 때가 있지 않나. 더구나 11년 차 부부에게 매일이 애틋할 수는 없다. 마치 공기 속의 산소와 질소처럼 존재할 때도 있고, 그러다 쾅. 충돌하기도 하고.


 며칠 전, 우리 집 근처 신축 아파트 '놀이터들이'를 갔다. 초대한 사람 없는 집들이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늦은 오후에 산책 겸 다다른 그곳은 어쩐 일인지 뛰어노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 아직 입주가 완료되지 않아 그런지, 저출산의 영향인지, 다들 어딘가에서 공부 중인지. 덕분에 놀이터를 전세 낸 듯, 신이 나서 뛰어놀았다.


 자, 새로 만든 그네가 튼튼한지 엉덩이 마수 한 번 해주고 가자. 그네에 올라타니 둘째 꼬맹이가 안아달란다. 그래, 아직 너 혼자 그네를 탈 수는 없으니 엄마가 안아줄게. 아기를 안고 그네에 올라앉는 순간 둘째가 몸을 뒤로 확 뻐팅겼다. 아기를 안느라 줄을 제대로 잡지 못한 나는 그 길로 그네 아래 바닥에 뒤통수 마수를 하고야 말았다. 꽈당, 쿵. 하며 등과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 아, 산책길 아니고 황천길이면 곤란한데. 그 아픈 순간에도 아기가 다치지 않았음에 다행이다 싶으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라.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거다.  

(사진:pixabay)

 눈을 잠시 감고 누워있는데, 쿵쾅쿵쾅! "여보오오오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소리다. 동그리. 사실, 우리는 오전 내내 별 것 아닌 일로 투닥댔다. 놀이터에 오기 전까지 반나절을 묵언수행 하는 중이었다. 이 달에 새로 구매할 물품에 대한 의견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신경전이었다. 돈 문제로는 다투지 않았으면 했던 바람이 깨진 것 같아 조금 서글픈 오전이었다. 카톡으로 우두두 서운한 감정을 토해내고, 냉장고보다 서늘한 냉기를 뿜으며 놀이터로 갔던 길이었다.

 

 아이들은 내 옆에 찰싹 붙어 놀다 내가 쿵! 넘어지니 잠시 어쩔 줄을 모르더니 이내 둘이 쿵짝이 맞아 놀기 시작한다. '저저저저... 역시 자식은 키워봐야 무소용.'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던 동그리가 웅장한 발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작디 작은 눈을 최대치로 뜨고 뛰어오는 그가 보인다.


 "여보! 괜찮아?! 눈 떠봐. 여보! 효나야아아아아아 아! 여보여보여보! "

 이 쯤되니 머리가 아니라, 귀가 아파서 눈을 떠야겠다. 

 "아. 나 등이 너무 아파"

 "어디 한 번 일어나봐바!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고개 좀 들어봐! 일어나 얼른."

 

 울기 직전이다. 내가 아니고 동그리 말이다. 실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보니, 작은 눈이 그렁하다. 놀라서 볼이 발그레하다. (추워서였나..?) 조금 있으니 몸도 마음도 진정되어 천천히 일어났다.


 '으이그, 미우나 고우나 남편 밖에 없구나.' 싶은 마음에 감정의 얼음이 녹아내렸다. 그 뒤로 언제 다퉜냐는 듯 연신 다정스런 동그리다. 상한 마음보다 놀란 마음이 컸나 보다. 코끝이 시리고, 명치가 알알한 것이. 마음이 아린다. 그날 저녁 우리는 이런 마음을 서로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정한 대꾸들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할 뿐이었다. 내 뒤통수와 우레탄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덕에 부부싸움은 녹았다. 초콜릿처럼.


 숙취에 고통받는 와중에도 아이를 데리고 커피를 사 오겠다며 나간 동그리. 아이 손을 빌어 초콜릿을 전해준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매년 무슨무슨 데이마다 잊지 않고 '작은' 선물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큰 한 방이 없어서 그렇지, 소소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다. 초콜릿도 녹일 따뜻한 남자였지.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거였지.  입 안에 녹아내리는 초콜릿을 음미하며 급히 써 내려가는 글이다. 다음 냉전이 오면 이 글을 읽고 이 마음을 떠올려야지. 다짐하면서.  - 발렌타인이라 급히 써 내려간 달콤한 기록.

도동아, 너도 고마워 :)

 

달씁달씁 결혼생활.

달콤했다, 씁쓸했다.

또 달콤함으로 잊는 게 결혼생활 아니겠습니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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