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담자 혜운 Jan 25. 2018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지금 살아 숨 쉬는 모든 유기체는 현실 세계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현실 세계'라 함은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인 세상이 아닌 모두가 다르게 지각하고 판단하는 '주관적인 세계'이다. 어떤 경우는 그 세계에 환상으로 가득한 경우도 있다. 특별히 'if then'의 사고로 가득한 세계인 경우도 있고.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쯤 성공한 기업가로 잘 나가고 있을 텐데, 그런 부모가 없어서 지금 이런 꼴로 살고 있잖아.'
'내가 시간만 있었으면 이번 시험 1등 했었을 텐데, 저번에 아파서 말이야. 그리고 친구가 갑자기 부르는 바람에 시험공부를 못했지 뭐야.'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얼마나 잘 나갔다고, 그때 내가 보증만 안 섰어도...'


그런 환상 속에 빠져 산다면 지금 당장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어쩌다가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본인도 무의식적으로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불편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직면하기 무서우니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며 변화를 꾀하지도 못할 것이며, 지금의 처지에 주저앉아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똑똑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단지 시험 성적만 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더더더 공부를 안 했다.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바닥을 친다면 희망찬 내 인생이 끔찍한 현실로 전환되어 좌절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피한 듯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환상 속 행복도 잠시였다. 누구나 그렇듯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려 철저하게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좌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영어학원에서 치러진 수준평가의 점수였고, 두 번째는 대학원 입시 결과였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나지만, 그래도 초급반에는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기억으로 강의 레벨이 기초-초급-중급-고급-실전 이렇게 나눠져 있던 듯한데, 나는 아무리 못해도 초급반에 배정되지 기초반에 배정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공부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특별하고 똑똑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환상과 달랐다. 나는 초급반으로 배정을 받았고 초급반의 교재를 구매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초급반을 등록하면서 교재를 구매했는데, 그 교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 교재만 봐도 어느 레벨의 반에 등록했는지 알기 때문에 누구라도 볼까 봐 꽁꽁 숨기고 다녔다.

현실을 직시하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현실을 보지 않고 눈 감을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불합격의 결과는 현실 속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기분을 맞보게 해주었다.  

대학원 입시에서 두 번째 떨어졌을 때,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시험이야 어떤 시험인지 맛본답시고 치렀기 때문에 불합격의 소식에도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지만, 6개월을 공부하고 난 뒤에 다시 듣게 되었던 불합격 소식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최악의 기분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 그 한주 동안 내가 느꼈던 그 무거운 공기. 내 앞날의 막막함.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쪽팔림.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가장 크게 폭발했고, 격노의 울분을 토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분노는 엄마에게 향했다.

"나는 그렇게 잘난 애가 아니라고!!!!!!
엄마 딸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제발 좀 자랑 좀 하고 다니지 마!!!
진짜 숨 막혀 죽을 거 같아!!!!!!!!
아아아아아!!!!!!!!!!!!!!!"


12시쯤 엄마랑 같이 점심을 먹고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다가 터진 분노이고 답답함이었다. 거실 한복판에서 대낮에 딸내미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엄마는 '알겠어. 알겠어.'라고 되뇌며 내 손을 계속 주물러 줬다. 너무 크게 울었더니 손이 저렸었다.

한참을 울고 났더니 온몸에 힘이 다 빠졌고, 엄마는 내 이부자리를 펴주며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잠들기 전에 쌍화탕도 하나 데워줘서 마시고 잤다. 잠이 드는 동안 내 옆에 앉아서 내 이마를 계속 쓰다듬어줬던 엄마의 손길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사건 이후, 엄마는 밖에 나가서 내 욕을 하고 다녔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다녔다. 백수에다 공부도 지지리도 안 하고 엄마 일도 더럽게 도와주지도 않는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 그리고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내가 중고등학교 때 얼마나 비행을 저지르고 다녔는지도 얘기하고 다녔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이 편안해진 시기.  내가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시기.

그 이후부터는 진짜 노력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수준이 정말 바닥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 기초부터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나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내가 가지지도 않았는데 있는 척하는 건 정말 숨이 막히는 일이다. 내가 정말 뼈저리게 안다.

그러니, 그들의 기대는 그들의 몫으로 맡겨두고 우리는 그 기대로부터 벗어나 보도록 발버둥 쳐보자. 그렇지 않으면 남의 요구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니 내 삶에서 나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니 남의 평가에만 예민해져서 심리적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남 눈치만 보다보니 너무 빨리 에너지가 소진되고,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그러니 삶이 재미가 없는 것이다.

타인의 기대에, 혹은 타인의 기대가 내재화돼서 아직도 숨 막히게 살고 있다면 '나'를 '구해주자'.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그대. 당신이 좀 더 힘을 내셔야 할 듯하다.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의 기술] 나와의 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