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담자 혜운 Jan 29. 2018

코리더와 함께 하는 항해

“언니, 오늘 집단 참 좋다. 조건적 애정에 대해 긴호흡으로 이야기 나눈 거 같아.”
“와, 난 답답한 게 더 컸는데, 너는 좋았다고?”
“사람들 표현이 답답했다는 거지?”
“허허허, 응.”
“물론 개인으로만 본다면 자기 마음 잘 몰라서 떠듬떠듬 얘기하느라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가 조건적으로 애정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것 같아.




집단상담이 끝난 후, 코리더로 함께 일하는 달님과 집에 가는 길에 나눴던 대화다. 우선 달님이 나에게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할 때 부족한 내 모습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불편감을 먼저 느꼈다. 그래서 달님의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며, 허점을 찔리지 않았다는 듯이 아주 태연하게 “그러냐?”라고 가볍게 반응해 버렸다. 하지만 달님이 먼저 전철에서 내리고 나 혼자 가는 길에는 달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곱씹게 되었다. ‘집단의 응집력’과 집단리더로서 취해야 하는 ‘참여-관찰자’의 태도와 관련해서 말이다. 
  
‘집단상담’이란 개인상담과 다르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상담이다. 1:1 개인상담이야 우리 둘이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상담을 시작하기 때문에 상담의 지향점, 즉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명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설령 내담자가 모른다고 할지라도 상담자가 하나의 줄기로 이야기가 수렴될 수 있게끔 이끌어 가면 된다. 
  
하지만 집단상담이란 그렇지 않다. 집단 리더 혼자만의 힘으로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모두 한 배를 타서 모두가 뱃사공이 되어 배를 이끌어 가는데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배를 젓는다면 그 배는 어디로도 향해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게 될 것이다. 
  
그 배가 한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끔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함께 힘을 써야 하는지 명시적으로 설명을 해주기도 하지만, 집단 상담이 진행되는 도중에 서로가 마음을 나눠가면서 암묵적으로 알 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 이것이 집단 상담 초반에 집단리더가 할 몫으로 '집단의 응집력'을 높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집단 리더는 내 욕구를 채우겠다고 말하고 싶을 때 아무렇게나 말하는 게 아니라 집단원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게끔 징검다리를 놔줘야 한다. 즉, 집단리더는 집단원들과의 대화에 몰입해서 함께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전체 그림을 살펴가며 집단원들 간의 관계를 살펴봐야 하는 참여-관찰자로서의 태도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끔가다 나도 정신줄을 놓고 소수의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데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그런 과정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놓치거나 공중으로 붕 떠버린 또 다른 중요한 마음이나 주제를 날려버리기도 한다하지만 이때 그들의 소외감을 알아채고날아가 버리는 중요한 마음들을 다시 붙들어 주는 코리더나 집단원들이 있기에 우리가 함께 탄 배는 또다시 제대로 된 항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지난밤에는 A가 B에게 조건적으로 애정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A와 B에게만 집중을 하며 A에게 '지적'만 하는 것에서 그쳤다. 하지만 달님은 이를 붙들고 A와 B 외에 다른 집단원들이 '조건화된 애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무조건적으로 서로 애정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더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또 한번 달님을 통해 '집단 전체 맥락을 살펴보기'를 상기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난밤에 나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그리고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챙겨가며 집단원들 모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챙겨주었던 달님에게 든든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함께 있어 다행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이 나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오고, 그 마음을 더욱 존중하게 된다.  또한 그가 집단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에 대해서도 존경을 표한다.

혼자일 때는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불안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은 두렵지만 시도해볼 용기를 내게 하고 험한 길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게 해준다. 

내가 느끼는 이 든든함을.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기에 오늘도 이렇게 한 꼭지의 글을 쓰게 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있었던 달님의 관점>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매거진의 이전글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