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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Mar 05. 2018

사람은 서비스 품목이 아니에요.

어떤 이는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데
타인의 인정이 있어야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애정욕구/인정욕구.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돈이 많지 않아도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 기뻐하고 사랑해주면 그 욕구가 채워지지만, 세상사 그렇게 녹록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 좌절 경험은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각자 살아갈 방법을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어 간다. 그 생존방식이 건강하고 적절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군가는 아픈 것을 강조해서 관심을 받고, 누군가는 귀여움으로, 또 누군가는 착하게, 혹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뽑아내 관심을 얻고 인정받기도 한다.
     
관심이나 인정에 그렇게 목메는 건, ‘나’라는 존재 가치가 ‘타인의 반응’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 흔한 자존감이라는 것 또한 나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는 누군가로부터 환대와 수용을 받아야지만 형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래서 그렇게도 타인의 관심을 받고자 아등바등하는 거다. 그만큼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렇게 타인의 관심을 갈망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입장은 어떠할까?

나는 어떨까.
누군가 자신의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의 승인이나 관심을 필요로 한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이전에는 그렇게 많이 경험하지 못했는데, 내가 집단 리더나 선생님의 자리에 있게 되자 생각보다 많이 경험하게 됐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전에는 내가 이용할 가치가 없었다는 거다. ㅎㅎ. 여하튼, 내가 ‘집단 리더’라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게 봤다. 그래서 이런 나에게도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 박지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좋아해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집단 리더’라는 위치에 있는 나를 권위자나 능력자로 바라보고, 리더인 나에게 인정받고자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야지만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기에 그랬겠지. 게다가 그들이 봤을 때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인정을 해준다면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게 되니 더더욱 나의 인정에 목멨을 게다.  그리고 내가 뭔가 '있어 보이니' 그것을 뽑아 먹으려고 내 옆에 더 있으려고 했을 것이다. 나를 좀먹듯이 말이다. 그러다 진액이 다 빠지면 또 다른 생물체로 다가가겠지.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지 못했고, 무엇인가 잘 해야지만, 어떤 역할을 해내야지만 관심을 받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쪽쪽 빼먹으며 성장하고, 나의 승인을 통해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들을 상당히 경계한다. 심지어 내가 싫다고 이야기를 해도 계속해서 내가 인정해 주기를 바라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싫어하게 된다. 싫어한다는 그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을 만큼 싫어질 때가 있다.
     
그들이 허기진 것은 알겠으나, 나를 이용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잠시 내가 필요할 뿐이지, 나의 기분이나 상태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더더욱 싫은 거다. 나는 그냥 그들이 필요할 때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대상일 뿐이니까.  
     
그것은 나를 착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은 사람을 착취하기도 한다.

그 필요/이유가 성욕 때문이든 식욕 때문이든, 외로움 때문이든 상관없이 어떠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물건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의 '승인'을 갈구하면서 나를 사용할라치면 상당히 기분이 더러워진다.
 
나도 인간적으로 대우받고 싶다.
     
씹던 껌을 내뱉듯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물건이 아닌.
내 감정을 존중해주고,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과 관계하고 싶다는 말이다.
필요에 따라 버려질 수도 있는 그런 냉혹하고 무서운 관계는 하기 싫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존중받는 그런 관계를 맺어가기를 희망한다.  
부디.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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