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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Mar 19. 2018

위험한 상담자


얼마 전에 동료와 ‘상담을 잘 한다는 게 무엇인지.’, ‘상담을 잘하는 상담자는 어떤 사람인 건지.’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동료가 내게 물었다. ‘너는 네가 상담을 잘 한다고 생각해?’ 이 질문을 듣고 어떠한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믿어.


그 대답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었지만, 내게 질문했던 그 동료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1년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더라면, 내 대답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면모는 어때야 하는지, 그리고 상담 장면 안에서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내 생각과 가치관이 형성되었기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상담을 잘 하는지, 집단 리더로서 자격이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부족한 면이 여전히 많고, 나 또한 전문가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하는 상담자이다. 하지만, 나는 상담자로서의 나를 믿고 있는 부분이 있다.
 
사실, 상담을 ‘잘’한다는 것은 oo이다!라고 딱히 말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담자의 현재 어려움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가 자라온 배경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연결고리를 분석해주며, 현재에 있지만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하는 부분을 걷어 내준다면 내담자의 삶이 한결 나아질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분석력과 통찰력이 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내담자의 저항을 잘 다루며, 내담자와 따뜻하고 지지적인 관계 형성을 잘한다면 상담을 잘 하는 것일까?  
 
허나, ‘이런 사람’은 정말 위험한 상담자라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몇 있다.
 
우선, 나는 근본적으로 ‘시종일관’ 따뜻한 면모만 보여주는 상담자에 대한 불편감을 갖고 있다. 내 생각을 반영해주는 『지금-여기에서의 전이 분석』 책의 내용을 인용해 보자면,

긍정적 전이를 강조하는 것은 또한 공격적 충동과 관련된 치료자 자신의 갈등 때문일 수 있다. 치료자 본인의 공격적 소망뿐만 아니라 환자의 분노까지 견뎌야 하는 상황이 힘들게 느껴질 때, 치료자는 반동형성의 색채를 지닌 방어에 의지하기 쉽다. 그 결과 치료자는 지나치게 온정적이고 치료적인 인물인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치료자는 환자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에 치우쳐서 필요할 때 확고한 한계를 긋는 일이 매우 힘들다. Winnicott이 말한 대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용납하지 못하면 피학성에 이르기 쉽다. (p.151)


상담자가 따뜻하고 지지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분명히 있고, 그 태도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공감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나 지지가 상담자 자신의 불안이나 두려움 때문에, 내담자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기 위해 따뜻함을 내비치는 상담자라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만약,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끔 상담자가 조종하는 것은 아닐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치료자들은 따뜻하고 지지적인 긍정적인 전이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지금-여기에서의 작업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p.143)


내담자는 당.연.히 따뜻한 상담자와 갈등을 하지 않으려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모른 채 지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런 마음에 힘입어 상담자 또한 내담자의 그러한 태도를 묵인한다면, 이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담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중요한 갈등을 상담 장면 안에서 일으켜야 하는 것이 상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내담자가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진정한 핵심 갈등/어려움을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다르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신에 대한 표상, 타인에 대한 표상, 그리고 관계에 대한 표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자가 이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게 두려워서, 자신은 그저 관찰자로서의 태도만 취하고, 멀리서 넘의 집 불구경하듯이 이래라, 저래라 조언만 하고 공감만 해준다며 내담자가 상담실 밖에서 경험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둘째, 자신의 욕구를 상담 관계 안에서 충족시키려고 하는 상담자가 있다면, 이 또한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내담자들을 통해 상담자 본인의 가치감이나 외로움을 충족시키려고 하거나, 찬사를 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면 그만큼 위험한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1.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상담자
2. 자기 가치감이 결핍되어 내담자에게 찬사를 듣고 싶어 하는 상담자
3. 자신의 정서적, 성적 외로움을 내담자에게 채우려고 하는 질 나쁜 상담자
 
이런 상담자들에게 피해를 받는 건 오롯이 내담자뿐이다.
 
1. 밖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자신의 감정, 생각, 욕구를 표현하기에 확신이 없는 내담자는 권위적인 상담자 앞에서 할 말을 못하고 이끌려 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밖에서 상처받는 관계들과 무엇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하면서, 오히려 상담자에게 더 많은 눈치를 보게 되고, 상담자에게 맞춰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 끊임없이 자신에게 찬사를 해주기를 바라는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고맙고 좋은 상담자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더 비난을 하게 만든다. 이런 식이라면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떠안도록 만들게 되지 않겠는가.
 
3.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의존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유아기적 욕구들을 상담자를 통해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도 크다. 게다가 초반에는 그러한 내담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고, 지지적이고 공감적인 관계를 통해 견고한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도 중요하다. 그 관계가 추후에 경험하게 되는 고난의 과정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담자가 언제까지나 유아기적 소망을 품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적응적으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로서 살아갈 수 있게끔 적절한 좌절도 주며 세상 밖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상담자 자신의 외로움을 충족시키고자 의존적인 상태인 내담자를 계속해서 품고 있고, 오히려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기 위해 상담자가 일거수일투족 간섭하고 관여한다면 그 내담자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길 수 없고 세상은 위험하다고 여겨서 상담자에게 더 많이 의지하게 될 것이 눈에 선하다.
 
행여 자신의 삐뚤어진 욕망을 인식하지 못한 상담자가 있다면 옆에서 이야기 좀 해주자. 그리고 상담을 받으러 간 내담자들도 상담자를 무조건 따르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상담자에게 느껴지는 어떠한 감정도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감정은 타당하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나의 결핍은 없는지, 나의 문제는 없는지 끊임없이 자기 분석을 해야 하고, 자신의 삶에서 관계 패턴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그때는 상담자 동료들이 나서줘야 한다. 당신 옆에 상담하기에 부족함이 보이는 동료들이 있다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해주는 것도 상담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되고 싶거나, 상담자로서 이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면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통해 스스로가 떳떳한 상담자가 될 수 있게끔 최대치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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