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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Aug 18. 2019

임신| 임신은 축복 ?!

누구에게나 예외는 있다.

"결혼은 안 하더라도 아기는 갖고 싶더라."

"정자은행 알아봐."

"(웃음) 나는 할 수 없잖아. 그리고 아직 그렇게 할 용기도 없고."


예전부터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없었지만, 임신 및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경험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이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것도 모른 채 생명의 신비로움, 새로운 관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근거 없는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 나였기에 실제 일이 닥쳤을 때 보였던 나의 태도는 나 스스로도 놀랐다.


처음 임신 테스트기를 하고 빨간색 두 줄이 비쳤을 때 현실을 부정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지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테스트기에 두 줄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이미 약국에서 준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뜻하는 바가 “임신”이라는 것을 못 본 사람처럼 정보를 탐색했다.


차갑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숨이 멎을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희미하게 나와서 임신인지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뿐이었다.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나도 바라던 일 같았지만, 속내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하는 행동이 그러했다. 복잡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들었고, 피임을 철저하게 하지 못한 나 자신과 상대에 대한 원망.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두려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등.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들이 튀어나와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가능했던 일이었고 바로 그 시점에는 그저 결론이 나지 않을 말만 뇌까렸다.


모두가 축복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냐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는 친구도 있었다. 임신이 어려워 마음고생하는 친구들도 잘 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변의 축하와 다르게 그 순간이 내게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분명히 혼란스러움에 가득 찼고, 결론 없이 반복되는 고민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새벽 수영을 마친 후 로션을 바르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유로운 이 삶을, 이 시간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삶이 모두 중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꿈꾸며 준비해온 내 미래가 한순간에 뒤틀어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차근차근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일들. 그 일들을 통해 빛을 받으려고 했던 내 욕심들이 임신이라는 사건 하나로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압적이었다. 내 선택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내 자유가 결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말로는 수없이 들어왔고,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의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제한적인 삶은 그저 나와 한발 떨어져 있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여유 없는 내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몸의 변화였다. 통제할 수 없는 신체적인 한계가 찾아왔다. 조증스럽고 주의산만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나는 체력 또한 받쳐주었기에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고 이를 실천하는 추진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 동안 하는 일들이 많았다. 적어도 나 스스로 그렇게 뿌듯해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임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내 체력은 급격히 저하됐고 원하는 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잠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버는 상담 '일' 말고는 다른 일정은 전혀 소화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당혹스러워서 그 원인을 심리적인 이유로 찾기도 했다.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닐까? 남들은 임신해서도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고 누군가는 첫째, 둘째를 키우면서도 셋째를 임신하고, 또 누군가는 책도 내고 박사 논문까지 써내는데, 나는 의지가 약한 것인지, 동기가 없는 건지,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 건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무너질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별의별 잡념과 죄책감이 혼란스러운 나의 정신과 육체를 좀먹었다.


주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들은 내가 겪는 증상들이 모두 자연스러운 거라고 했지만,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미련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하게 막았다. 임신으로 인해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 여겨졌다.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희생과 포기가 크게만 느껴졌다. 허나, 그 무엇보다도 임신한 상태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나의 경직성이었다. 그때만 해도 임신으로 인한 내 몸과 삶의 변화는 나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누구도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나눠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무엇으로도 나의 상실감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그 순간을 만끽하지 못했었다.



#임신 #출산 #육아 #결혼 #관계 #경험하지못했던새로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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