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그 기억이 있다.
그 앞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몸 전체가 욱신거렸던 밤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이 해결되지 않아서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낑낑 대다가 결국 악악 소리 내며 발버둥 쳤다. 그 소리에 엄마가 내 방으로 넘어와 다리를 주물러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노곤해졌다. 잠이 서서히 들 때쯤 그 편안함을 잊을 수다 없다. 거의 잠에 빠져들어 의식이 희미해졌을 때도 엄마는 여전히 내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아주 캄캄한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했을 엄마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원더윅스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신체가 급성장할 때 성장통을 겪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하는 시점에서 아기들이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시기라고 한다.
나의 아기가 그 기간을 지나고 있다. 기저귀도 아니고. 배고플 시간도 아니고.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그저 잠이 오는 타이밍인데 악을 쓰며 울어 댄다. 태어났을 때부터 배만 부르면 잘 자고 잘 놀던 씩씩한 놈이 서럽게 흐느끼기도 목놓아 울어재끼기도 한다.
얼마나 불편하면 그럴까.
그때마다 내 어렸을 적 새벽 밤이 생각난다. 나도 그때 뭔지 모르게 힘들었고 온몸이 답답하고 발버둥 치고 싶었다. 그 정도로 환장할 것 같았지만 엄마의 손길로 편안함을 되찾았다. 그때의 기분 좋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뻔뻔하게 좋았고, 나는 마땅히 편안함을 제공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힘들어하는 아기를 볼 때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을 엄마도 똑같이 느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인도 피곤하고 졸린데 나를 그렇게까지 케어할 수 없었을 거다.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안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낮에 혼자서 아기를 보는 게 힘들었냐고 남편이 물었다. 아니라는 대답도 못하고 그냥 고개만 흔들었다. 그럼 무슨 생각에 눈물이 나냐고 물었다. 곧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한참 있다가 답했다. 너무 예뻐서. 너무 사랑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내 답변에 남편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웃었다.
잠이 많은 나지만 아기의 칭얼거림에 벌떡 일어난다. 잠귀가 어두운 나지만 아기 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여나 잘못될까 내 몸에 있는 온갖 감각들을 예민하게 깨워두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다.
사람들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귀.하.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다. 이제야 귀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그 전에는 말로만 떠들어 댔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존재였을 것이기에, 누군가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온 힘을 다해 지켜줬을 것이기에 우리도 귀하게 대해야 한다.
뭣도 모르고 차갑게 굴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