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몸

by 박지선

신생아실에서 처음 아이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그때의 놀란 마음을 남편과 이야기 나눈다. 그렇게 작은 아이를 처음 봤다. 자연분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우리 아기는 더 작게 태어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이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그 작았던 몸을 자꾸 잊게 된다. 아이를 가깝게 안고 있기에 아이가 얼마나 작은지 더 자주 망각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아이를 대등한 관계로 보게 된다. 아기 침대에서 울고 있는 아기가 그렇게 작은지 잊을 때가 있다. 그 울음이 귀찮을 때가 있고, 버거울 때가 있고, 모른 척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잘 분배하고 기분을 잘 관리해야 친절한 태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는 우는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안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출산 직후에는 그놈의 호르몬 때문에 눈물도 많이 났다. 너무 작아서 안쓰럽고 미안하고. 내 몸도 힘들고. 첫 한달동안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미안하다’였다. 아이가 울면 그렇게 미안했다. 그 울음이 아이의 언어로 들리지 않고 고통을 표현한다고 여겨졌기에 그러했다. 합리적인. 상식적인 사고는 자꾸 흐려졌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어떤 날은 육아에 자신감이 붙어 기분이 좋다가도 어떤날은 죄책감에 눈물바람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게 드는 순간은 내가 아이를 부담스럽게 여긴 후다. 그래서 아이 때문에 지친 마음이 들라치면 거울을 본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본다. 수시로 본다. 아이의 몸이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하찮고, 초라한 몸을 갖고 있는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작디 작은 아이라는 것을 스스로 상기한다. 그 효과는 꽤 크다. 정말 작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객관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상대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게 되면 그에 맞춰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입장과 반응이 이해되고 내 생각을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기에 가능하다.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통용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일방적으로 맞춰야하니 훨씬 더 고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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