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의 극치

by 박지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쉴틈이 없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시간, 하루 단위의 개념은 내게 없어진지 오래고, 일주일 단위로 바뀌어야 시간이 흘렀음을 지각한다. 그토록 몸은 매우 바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 먹이고 놀고 재우고, 그러다 또 밥 먹이고 놀고 재우고, 내 점심 먹고. 그러다 또 밥 먹이고 재우고 놀고를 두 번 정도 더 하면 이제 또 씻기고 밥 먹이고 치우고 재우면 밤이다. 그러면 또 자고 또 아침이다. 하루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몸은 그토록 바쁜데 너무 심심하다. 바쁜데 심심한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지만. 정말 너무 지루하다. 지루한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반대되는 두 가지 상태가 항상 공존한다. 웃긴다. 몸은 바쁘지만 머리는 한가하다. 그래서 심심하다. 아이를 보는 중간중간 책도 보고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는데도, 결국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나의 두뇌는 작동할 일이 없다. 심심하면 복잡한 사고를 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몸에게 모두 할애하기 때문에 머리에 나눠 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고로, 이 문제는 몸이 편안해지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다. 사실 여유가 생기고 몸이 편안해줘도 이대로 살아갈까 봐 걱정되기도 하다. 이 상태에 안주하게 될까 봐, 더 이상 내 두뇌가 작동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그냥 심심하게 살아가야 한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똥 싸고 싶을 때 자유롭게 쌀 수 없는 것과 심심함을 견디는 것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크지 않으냐고. 아이와 노는 게 재미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육아는 재미없다. 아이와 함께 있어서, 아이가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행복감과 만족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재미없어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때는 더 우울해졌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싶어서 활동을 하다가 외려 내 몸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결국 얼마 하지도 못하고 다시 아이에게 불려가고,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치지도 못하는 그 하루가 그렇게도 속상하고 아쉬웠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하루를 그렇게 아쉬운 하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의 재미없음을 받아들이고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으니, 꾸역꾸역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때보다 훨씬 마음이 수월하다. 지금처럼 그냥 생각나면, 시간 나면 적고 끄적이면 되겠지 싶고, 머리가 단순해지면 또 그런대로 맞춰서 살아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만다. 점점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보다.


그래도 남편한테 또 묻는다. “재미난 일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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