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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Oct 05. 2016

지금, 철저하게 도망가고 싶다.

오늘 일은 내일 생각하자.


해리 증상은 과연 심각한 외상을 경험했던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


해리(dissociation)는 압도적인 스트레스에 직면하여 의식이 변화된 상태로, 대부분 위협적인 상황과 결부되어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멍한 느낌, 비현실감, 심지어 자신의 신체 밖에 있는 듯한 느낌에서부터 정체성의 급격한 이동과 함께 기억상실증이나 '시간 상실'의 경험 등 그 범위가 다양하다(도서. 트라우마의 치유 中).


A는 어렸을 때부터 폭군 아버지로부터 신체적인 학대를 받고,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어머니로부터는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데 교실에서 느껴지던 것이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고, 만화 그림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한 장의 종이처럼 되어 있어서, 손으로 찢으면 찢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는 외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들 중 ‘비현실감(derealization)’에 해당한다(비현실감: 외부 세계가 현실이 아니거나 왜곡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 즉, A는 어렸을 때부터 애착 대상들로부터 자신의 심신(心身)이 손상이 되어왔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외부 세상이나 자신의 감정 상태로부터 ‘해리’가 되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선택은 이후 자신의 삶에 상당한 불편감을 초래하게 되는데, A는 자신의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던 분노감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운동을 통해 이를 풀어 나가보려 했지만, 공격적인 생각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떠오를 때마다 자신 스스로를 매우 끔찍하게 여겼다.



비단 이렇게 큰 외상을 경험하지 않아도 가끔씩 우리 주변에서도 해리 증상을 보이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특히,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가 나에게 강한 분노감을 표현하고 나서 그다음 회기에 만날 때 지난주에 화냈던 상황에 대해 기억을 잘 못하는 경우가 그러한 상태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가볍게는 우리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가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크고 작은 감정들에 대해 마주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그 감정들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한 번씩 다들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나 싶다. 어떤 상황이나 관계, 혹은 감정에 대해 회피를 하거나 부인하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불편한 그 무엇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이든 사용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나를 훼손을 시키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것이다.



큰 외상을 경험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전문가를 찾아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스트레스 사건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리는 지금 경험하는 감정에 대해 견딜 수 없을 때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분리(detatchment)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우리가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마음의 기제에 대해 명확히 알면 나 스스로나 타인에게 적중한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 옆에 있는 사람, 배우자나 자녀, 부모, 친구 누구든 그 사람이 심리적으로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그 상황을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견뎌’ 주는 것이다. 때에 따라 위로나 격려, 혹은 공감이나 조언 등을 해가며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꾸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감정은 그것들로부터 도망가면 갈수록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그것을 미루고 있을 때 더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할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나 소통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면 '집단상담'에 참여해보자. 함께 모여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들으며 서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이 건강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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