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임신, 준비되지 않은 남녀

by 박지선

얼마 전 남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임신한 아내를 둔 직장 후배에게 ‘임신부는 아픈 사람이니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주라’고 했다고 한다. 나에 대한 이해력은 턱없이 부족했던 사람이 밖에 나가서는 어찌 그리 너그러운지. 임신 초기 감정이 널을 뛰는 나를 보고는 문제 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대화 자체를 단절하며 결혼 자체를 거부했던 그런 사람이 남들에게 코치해줄 때는 어찌 그렇게 너그럽게 표현을 하는지. 노여움에 소화가 안됐다.

결혼 전 임신을 하게 되어 임신 초. 중기에 결혼 준비를 서둘러하게 됐다. 일명 혼전임신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부부인 게다. 그 당시 정말 많이 싸웠고 사내마내 이야기도 많이 했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 상태에서 진 빠지게 울기도 많이 울었다. 태교가 뭐야. 그저 이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보자는 마음에 소통하려고 열심히 했다.

어찌어찌 결혼식을 마치고 공식적인 부부로, 뱃속 아기의 예비 엄마. 아빠로 살아가게 되었다. 나도 안정기로 들어서면서 감정 기복이 잦아들고 남편도 누군가의 케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기분이 좋았는지 우리 둘 다 조금씩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우리 사이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양보도 먼저 했다면 결혼 후에는 남편도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나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내 말투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기했다. 공감 능력이 제로인 줄 알았는데 어떤 때에는 신사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기도 했다.

아기를 낳기 전 우리 부부는 각자 걱정이 많았다. 자기 스스로는 준비된 부모라고 여기지만, 상대를 봤을 때는 걱정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녔기 때문이다.

아기 낳기 전 남편의 성격 중에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참을성이 부족한 면이었다. 좌절에 꽤 취약해서 계획대로 안 되면 화를 내는데, 예상했던 시간에 먹고 싶은 메뉴를 못 먹었을 때도 좌절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통제 불가한 아기와 살아갈 때는 얼마나 힘들어할까. 그 옆에 있는 나는 또 얼마나 힘들까 걱정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그 작은 존재가 우리 삶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지 예상할 수 있도록 많은 설명을 해주었다.

남편은 나의 이기적인 태도를 걱정했고, 지금도 염려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한 면일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고, 누구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은 적이 없는 내 삶의 중심은 ‘나’였다. 이런 내가 아기를 위해 몇 년간 내 시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런지. 참말로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자주. 부모 손에 크지 않은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경우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자주 이야기했다. 남편의 불안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줬다. 내가 기분이 좋아야 아기에게 웃으며 대할 수 있고, 결론적으로는 그 상황이 아기에게 더 좋을 거라고 반박하며 이야기했다. 이런 내 모습이 남편의 걱정을 더 부풀려 줬을 것 같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났다.

내가 걱정했던 남편은 생각보다 이외였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닌 아기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다. 밥 먹는 시간을 매우 중시하는데 자신의 밥시간도 아기의 밥시간 스케줄에 따라 변경했다. 물론, 아기를 돌보기 위해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참지 못하고 욱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적응해 가는 것 같다.

나 또한 남편이 보기에 생각보다 배려심 많고 양보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물론 선택제왕을 선택했을 때, 모유수유를 6개월까지만 하고 그만둔다 했을 때, 아기 수유 시간 텀을 아기가 아닌 내가 정하려고 했을 때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기며 못마땅해했지만. 또 반대로 아기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을 하는지 그 노고를 잘 알기도 하니까 말이다.

계획했던 임신이 아니었고, 약속했던 결혼도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오늘도 조금씩 엄마 아빠로서, 남편. 아내로서 서로가 적응하고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 너무너무 마음에 안들 때도 있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받으려고만 하고 자기 자신밖에 몰랐던 철없던 우리가 그나마 조금씩 배려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게 미세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손해를 덜 볼까 머리 굴리던 두 남녀가 약간씩 손해도 보고, 상대의 고생에 고마워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이 작은 아기가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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