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안 예쁘다

by 박지선

“아... 너무 오래 본 느낌이야.”
“응??”
“ㅇㅇ이를 너무 오랫동안 본 느낌이야.”
“벌써 그러면 어떻게 해?”
“그러게.”
“ㅇㅇ이가 안 좋아?”

아이 보는 게 지겹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남편은 으레 아이가 예쁘지 않으냐며 되묻는다. 내 몸이 지치고 힘들다는 거지 아이가 밉다는 게 아닌데 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갑자기 나 혼자 훌쩍 떠나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힘듦을 떠나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바라보는데 그 어떤 감정도 안 들었다. 그냥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별개다. 사랑하냐 안 하냐의 문제를 떠나서 내가 어떠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에너지를 소진했다는 뜻이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는데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밖에는 소독해야 할 젖병들과 그릇들, 장난감들, 아기 빨래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내 에너지는 바닥을 쳤다. 뒤처리를 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기분을 업 시키며 할 일을 했었는데 그날은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 나를 달랠 수 없었다.

어차피 체력은 바닥나 있으니, 기분이라도 좋게 만들어서 몸을 움직이게 할 생각에 술을 찾았다. 아! 이래서 다들 술을 마시는구나! 그때 처음 온몸으로 이해가 됐다.

아이가 잠들자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이렇게 달콤할수가. 한 캔, 두 캔 마시고 난 취했다. 퇴근이 늦은 남편이 들어와서 거실에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오늘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으며 나를 토닥였다. 남편은 서둘러 집안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그 타이밍에 잠에서 깬 아이를 토닥여 준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잤다.

아침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다음 날에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바깥바람을 쐤다. 그러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따뜻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남편 덕에, 엄마 덕에 잠시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떨어져 있을 때 제일 보고 싶다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정말 생경했고 무서웠다. 아이와 함께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도망가고 싶다고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되는 마음에 육아 선배들에게 물었다. 이런 기분, 이런 생각 든 적 있느냐고. 그랬더니 1초 만에 답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당연한 거라고. 드디어 때가 왔냐며 웃는다.

안도했다. 이런 기복을 거쳐가며, 그때마다 살 길을 마련하며 견디는구나.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해됐다. 아이에게 반응하지 않는 우울한 엄마들과 중독자들. 그들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구나. 다르다고 생각한 내가 우스운 거구나. 나도 우울해서 반응 없는 엄마가 될 수 있고, 기분 전환을 위해 매번 술을 찾는 중독자가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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