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릴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안다. 아이가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아이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싶지만 그 감정을 헤아려줬다.
“기분이 안 좋아?”, “피곤하고 힘들어?”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던 아이는 날카로움이 배제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우는 아이를 잠시 토닥여 주었다. 울음이 잦아들기에 물었다. “이제 기분이 좋아졌어?” 고개를 다시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주 잠깐 품 안에서 울고는 다시 씩씩하게 놀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말로만 설명하던 것을, 내 아이에게 시도해보고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했다. 뭔가 불편해서 이를 짜증으로 표현할 때 그 불편함을 수용하는 어투와 몸짓으로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면 아주 작은 이 아이도 편안하게 느끼는가 보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 ‘그만해!’, ‘적당히 좀 해!’, ‘조용히 좀 해!’ 뭐 별의별 맞대응도 자주 했겠지만, 감정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함께 했던 말들을 아이가 먼저 하게 되면 화가 났던 내 기분도 풀어지고, 좋아지고 그런다. 내가 화를 내면 아이가 묻는다. “화났어? 화 풀어~. 화 더 풀어~”
내가 같이 맞대응하며 짜증 내는 싸움을 할 때도 마무리는 아이의 마음, 내 마음을 이야기하며 매듭짓는다. 나중에는 직접 물어보고 들을 수도 있는 날이 오겠지.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날이 오겠지 싶다. 그런 날에도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엄마로 옆에 있고 싶다. 누군가 내 마음을 물어봐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그럴 때 나한테 정말 관심이 많다고 느껴지니까 나도 내 아이에게 마음을 물어보고 싶다. 내가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있는 한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