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당신은 착한 어린이였습니까?

by 박지선




















사람의 말은 곧 태도로,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를 출산하기 훨씬 전부터 특히 상담 일을 하면서 어느 쪽이든 소수자 입장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사용하는 언어들 중 차별적 의미가 담긴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만 했다.​


출산 후에는 아이가 보는 그림책을 보고, 동요를 같이 부르며 이전에는 생각 못 했던 성차별적, 혹은 정형화된 역할로 사람을 규정짓는 단어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어체뿐만 아니라 구어체에도 잘못된 표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줄 때 피하고 싶은 동요는 내가 부르지 않았고,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단어를 바꿔서 읽어줬다.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남편이 잘못된 단어를 선택했을 때는 내가 바꾸어 다시 말해줬다.​


그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착하다’, ‘예쁘다’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참 많이 한다.​ 오늘은 착하다는 말을 씹어보자.


울지 마. 착하지~

친구한테 양보해야지~ 그래야 착한 어린이지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 주신다는데~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양보, 배려라는 말 끝에 항상 착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웃기는 소리다.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게 아니라 같이 잘 어울리기 위한 사회적 선택이었는데 그 의미와 자유를 퇴색시킨다.

어른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 착하다는 말로 아이의 행동을 종용하는 줄도 모르고 무식하게 마구 쓴다.

반발심이 큰 나는 착하다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 아이에게 절대 쓰지 않는 말 중 하나이다.​


나도 어른들 말 가려가며 들었고, 절대 착한 아이가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는데

나 편하자고 내 아이에게 착한 아이가 되라고 권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


“당신은 착한 어린이였습니까?”

“그렇다면 착한사람 대물림은 당신 세대에서 끝내기를, 아니었다면 그 입 당장 다물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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