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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받을 줄 아는 능력

by 박지선

연초에 오래된 집단원(집단상담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저에게 새해 편지를 썼다고 이야기했어요. 편지를 썼는데 깜빡하고 안 갖고 왔다며 다음 주에 주겠다고 했죠. 저는 손사래를 치며 안 받겠다 했죠. 당시에 집단원은 잠시 민망해하는 듯했으나 이내 알겠다고 답했어요.


한 주가 지난 뒤, 집단원은 지난주에 제가 했던 말에 화가 났다고 했어요.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편지를 썼는데 그 마음이 거절당한 것 같다고 대체 왜 편지를 주지 말라고 했냐고 따졌어요. 저는 할 말이 없었죠.

정말 미안했어요. 편지 받기 거절한 건 지극히 제 마음 편하자고 한 행동이니까요. 제가 잘못했죠.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싶어 거절했지만 상대방은 마음이 거절당한 기분이 든 거니까요.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편지 받고 싶다고 졸라대서 다시 받았어요. 받아 보니 좋더라고요.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제 입으로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실상은 저도 부끄러워 못하고 있었어요. 이는 겸손의 태도가 아니라 내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였어요. 상대를 존중한다면 그가 표현하는 마음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태도 이것이 관계를 잘 맺기 위해 필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누군가 날 좋아하는 게, 상대에게 무엇인가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여러 해 동안 집단상담을 통해 관계를 맺어오면서 알게 된 게 있어요. 제가 그렇게 호감상은 아니라는 것을요. 비호감에 가깝죠. ㅎㅎ 그래서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몹시 신기하고 부끄러웠죠.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았던 마음들을 이제는 꽤 진지하게, 소중하게 여기게 되니 제 마음이 더 꽉 차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당연하다 뻔뻔하게 받는 것도 별로고 꼴값 떨며 거절하는 것도 별로네요.


이제는 소중히 감사하게 잘 받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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