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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12. 2022

슬픈 비상 2

선입관에 관한 고찰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밤새 내린 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당을 둘러보고 나무에 물을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그 일을 생략했다. 진딧물이 생긴 나무는 없는지 살피다 꽃기린에 넓게 펼쳐진 거미줄을 봤다. 비가 온 뒤에는 거미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빗방울이 걸려있는 거미줄은 책에서 읽은 '인드라의 구슬'을 연상시킨다.


마당에 거미줄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작년부터는 나무마다 걸려있다. 꽃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가다가 거미줄이 얼굴에 감겨올 때가 있다. 내 딴엔 조심한다고 허리를 굽히고 심지어 낮은 포복으로 지나갔는데도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럴 때면 순간 정신이 확 든다. 섬찟함이 온몸에 찌릿하게 퍼져온다. 얼굴에 묻은 거미줄을 손으로 몇 번이나 훔쳐내면서 큰 곤욕을 치를 뻔했는데 다행히 화를 면한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겐 이유 없이 갖게 된 거미에 대한 선입관이 있다. 그 선입관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봐왔던 영화가 가장 주된 원인인 것 같다. 거미가 출연하는 장면은 대개 극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 일 때가 많았다. 호러영화에서 음산한 분위기의 폐가, 빛이 아주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다락방 또는 어두운 동굴의 입구 등에 쳐져 있는 거미줄은 대부분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물론, 거미가 희망의 아이콘이 된 영화도 있다. 스파이던 맨 시리즈물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인간의 힘을 미화한 오락물일 뿐 결코 거미에 대해 제대로 알게끔 해준 영화는 아니었다. '샬롯의 거미줄'에서는 거미가 희망을 주는 동물이 되기도 했다. 가수 '거미'는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때 한번 걸리면 벗어나지 못하는 거미줄의 마력처럼 자신의 노래를 듣고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뇌피셜일 뿐이지만.


나는 거미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매체에 의해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거미를 싫어하고 있음을 알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던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는 것이지 않은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던 좋은 점이 보이고 마음이 열리기도 할 터인데 말이다.


올여름은 좁은 마당 여기저기에 쳐진 거미줄이 부쩍 늘었다. 거미가 새끼를 친 까닭인지 거미 한 마리가 영역을 넓힌 까닭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부쩍 늘어난 거미줄을 보며 거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여름이다. 자기를 제대로 좀 봐달라는 거미의 발악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저 거미들과의 만남도 필시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끈의 준엄함을 생각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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