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것들을 보는 일은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함께 우리의 삶이 녹아 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의 소멸이 주는 처연함이기도 하다. 심장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소멸된다는 것은 한 세월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도 같다.
목포에 있는 어느 재개발 예정지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주를 마친 아파트에는 철 따라 꽃 피우고 열매 맺은 나무들이 그곳이 사람 사는 공간이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발코니 난간에 놓인 빛바랜 선인장 화분과 조우하는 순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고 말았다.
주인장의 눈물겨운 배려였을까. 비록 버리고 갔으나 밖에 올려두고 간 걸 보면 생명이 이어지기를 바랐던가 보다. 저렇게 자리 잡고 서서 사계절이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 것이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개나리가 피어나고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끌어당겨 살을 찌우다 싸늘한 밤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달을 보며 옛 주인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르리라. 그렇게 그리운 얼굴을 그려가면서 목포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추운 겨울은 또 어떻게 견뎌냈을까.
버리고 간 세간살이가 바람과 빗물과 햇빛에 스러져가고 있는 곳. 콘크리트 벽에 칠해진 페인트가 벗겨지듯 이제는 빛이 바래버린 먼 옛날의 시간들이 전설처럼 잠들어 있는 곳.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잊히는 곳. 이곳은 이제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어 그들의 시간으로 이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