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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12. 2022

스러져가는 것들의 서사

스러져가는 것들을 보는 쓸쓸함

스러져가는 것들을 보는 일은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함께 우리의 삶이 녹아 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의 소멸이 주는 처연함이기도 하다. 심장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소멸된다는 것은 한 세월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도 같다.

목포에 있는 어느 재개발 예정지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주를 마친 아파트에는 철 따라 꽃 피우고 열매 맺은 나무들이 그곳이 사람 사는 공간이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발코니 난간에 놓인 빛바랜 선인장 화분과 조우하는 순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고 말았다.


주인장의 눈물겨운 배려였을까. 비록 버리고 갔으나 밖에 올려두고 간 걸 보면 생명이 이어지기를 바랐던가 보다. 저렇게 자리 잡고 서서 사계절이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 것이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개나리가 피어나고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끌어당겨 살을 찌우다 싸늘한 밤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달을 보며 옛 주인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르리라. 그렇게 그리운 얼굴을 그려가면서 목포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추운 겨울은 또 어떻게 견뎌냈을까.


버리고 간 세간살이가 바람과 빗물과 햇빛에 스러져가고 있는 곳. 콘크리트 벽에 칠해진 페인트가 벗겨지듯 이제는 빛이 바래버린 먼 옛날의 시간들이 전설처럼 잠들어 있는 곳.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잊히는 곳. 이곳은 이제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어 그들의 시간으로 이어지리라.

스러져가는 것들을 보는 일은 손을 놓친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다.


                       2020년 6월,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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