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로 살아간다는 건

잘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내게 온 것들

by 나이현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요동친다. 내 생각에 사람마다 그냥 그런 때가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많이 바뀌는 시기. 이전부터 만나던 누군가와는 안 맞는 대화소재가 달라지는 시기. 최근 오로지 내 기준으로 정한 잘 산다의 정의는 첫 번째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다, 두 번째 나만의 공간(인테리어까지 신경 쓴)이 있다, 세 번째 나 혼자여도 안정적인 감정상태를 갖고 있다, 정도이다. 최근들어 나는 잘 사는 삶의 기반을 다지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다. 요즘 사회 자체가 갓생 중독에 빠진 듯하기도 한데, 아마 내가 계속해서 잘 살아야 한다, 독립심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드는 것은, 장녀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와 동생을 사랑하지만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남편을 둔 엄마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마의 신세한탄을 들어야 했고, 나보다 기회가 적었던 동생보다 잘하고 책임감이 강해야 했다. 모두가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야 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현재 나는 생활비(쇼핑, 병원비, 교통비, 학교 교재, 만남 등)를 거의 내 힘으로 해결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엄마한테 용돈을 먼저 요구하는 것이 나로서는 어렵다. 그런 배경이 나를 지금 이렇게 조급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 본 결과 생각보다도 이를 이루어내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드는 게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경제 지식을 넓히기 위해 재테크 책을 찾아 읽어보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지만 일단 현재 내가 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저축으로 진득하게 사는 것이 최대인 듯했다. 주식 같은 거 해볼 수는 있지, 그것도 시드머니가 모여야 뭘 좀 해보지. 위험부담이 있는 건 시도하기 어려웠다. 실패하고 메꿀 것까지 생각해야 하니까. 또 요즘 같은 세상에 미래를 걱정한다던가, 과거를 후회한다던가 하는 것들 없이 사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로 끊임없이 걱정하면서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지만. 이러한 현실과 풍족하지 못한 내 마음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당장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안정적이고 싶은데 아직 알바로 사는 대학생일 뿐이니. 대학교 열심히 다니고 현재를 살 정도의 돈이 있으면 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내 욕심이 좀 있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남자친구 G에게도 그 영향이 갔다. 내 조바심은 답답함으로 이어져 한순간에 절망적인 감정을 이끌어냈고, 나는 G에게 전화로 호소했다. 조금만 모으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고, 나는 혼자서도 잘 살아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되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병원비를 달라고 말 못 하겠다고. 하루 만에 빠르게 감정이 요동쳐 눈물까지 흘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잘해보려는데 쉽지 않으니 순간 서러웠을지도. G는 그런 나를 항상 응원하고,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집에서는 막내인 G가 나한테는 힘이다. 나한테 "나랑 있는 것처럼, 동생이 요구하는 것처럼 여보도 그럴 수 있게 노력했으면 좋겠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야." 같은 말을 해주는 건 G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내 상황을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니. 그런 G와의 대화로 지금은 조급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다.


나는 이제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은 여전하지만, 그 안에서 안정을 찾았다. 조급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내면을 가꾸면 되는 것. 충분하지 않은가. 스스로 잘 살기 위한 정보를 찾아보고 조금씩 실천하는 것만 해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하나씩 달성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혼자 독립해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려고 요즘은 노력을 많이 한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고 싶고, 근데 그게 잘 안되네 같은 생각보다 G와의 미래를 꿈꾸는 것에 시간을 더 들인다. 그런 현재가 좋다. 사실 잘 산다의 기준은 모두가 다르다. 보편적인 것들이야 있긴해도 결국 내가 잘사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일 것이다. 작고 소소한 것들. 요즘은 마음을 다잡고 한동안 올리지 않았던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업로드하고, 북스타그램을 개설하고, 블로그에 구매후기를 작성하고. 도서관에서 진로에 도움이 될 책을 빌려 읽었다. 알바도 꾸준히 구하고 면접을 봤다. 잠을 잘 자고 날마다 스트레칭을 하며 일기도 쓴다. 이런 나에게 자책 보단 잘하고 있다고 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장녀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자신을 더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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