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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 Oct 28. 2024

Ep.05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군대로

나를 조각하자

군대는 딱히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학회가 1년 과정이었기에 2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다닌 후, 군대에 가게 되었다. 카투사도, 친구와 함께 지원한 동반 입대도 떨어지고, 군대를 빨리 다녀와서 칼복학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7월 육군 입대를 신청하여 군대에 가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물리학과라는 이유 하나로 탱크를 다루는 전차병에 배정되었고, 어쩌다 보니 후반기에서 탱크에 타서 포를 쏘고 있었다. 자대에 가서는 어쩌다 보니 행정병 자리가 있었어서 행정병에 배정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의 연속이었고, 어쩌다 보니 이론적으로 꿀을 빨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고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시국에 군 복무를 했던지라, 당시에는 외출 및 외박을 나갈 수 없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일자의 휴가가 지급되었다. 지금까지 선임들에게 지급된 휴가를 쭉 째려보다가, 뭔가 개선할 껀덕지를 발견한 것이다. 솔직히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분기별로 몇 번씩 외출 및 외박을 나갈 수 있고, 외박을 휴가 1일, 외출을 0.5일로 반영해서 계산했다. 이 때, 만약에 다 합했는데 소수가 된 경우, 반올림해서 휴가를 주었다. 즉, 합쳤을 때 3.5일로 나왔으면, 휴가 4일을 받는 식이었다.


 기존에는 전체 복무 기간을 대상으로 외출 외박을 못 나간 일수를 쭉 더해서 전체를 반올림해서 휴가를 줬었다. 근데 사실 원론적으로 따져 보면, 외출 외박을 한 분기 동안 못 나가서 휴가를 주는 건데, 그럼 분기별로 끊어서 줘야지, 싹 합쳐서 준다는 게 뭔가 좀 이상했다. 그래서 맞선임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잘 모르겠고, 일단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고 말해주었다.


 이거 뭔가 잘 파보면 휴가를 더 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관련 공문을 찾아서 꼼꼼히 살펴봤다. 공문에서도 ‘분기별로’ 휴가를 지급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게 부대에 적용된다면 전체를 더해서 반올림했던 것이 부분부분 잘라서 반올림하도록 바뀌니까, 인당 많으면 휴가 4일, 적으면 2일은 더 줄 수 있었다. 공문을 들고 행정보급관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이러하니 휴가를 이렇게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그 사람도 받아들여서 나는 전역을 앞둔 선임들의 영웅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걸 받아들여주었다는 점에서 행정보급관도 군대 내부에서는 굉장히 열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부대 자체가 선진병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외에도, 본부 중대만 싸고 돌면서 우리 중대가 업무 짬을 맞는 상황이 그지같아서 업무 체계를 엎어야 한다고 따지기도 했고, 동기를 갈구는 간부가 있어서 상황을 듣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고발하기도 했고, 선임과 같이 근무하는 게 너무 큰 정신적 고통이라는 동기의 말에 근무 짜는 표를 엎어서 전체 근무를 조정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뭔가 불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가만 두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스탠다드인 군대에서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며 실리를 따지는 나는 점잖은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기 휴가를 더 달라며 수시로 찡찡거리는 선임을 보면 내가 뭣 하러 휴가를 발굴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선임과 근무를 나가지 않게 내가 근무를 조정한 동기에게는, “나는 선임이랑 근무 다 했는데 쟤는 왜 안 하냐”라는 따가운 뒷말이 들려왔다. 뭐만 하면 따지고 드는 내가 싸가지없었다고 생각했는지, 간부에게 이새끼 싸가지가 없다는 마음의 편지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근데 솔직히 좀 싸가지없긴 했다. 간부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또래상담병을 하며 되물림되지 않도록 기를 썼던 부조리가, 정말 아끼는 후임에게서 다시 피어나는 것을 보고, 다 같이 편하자고 만든 체제가 단물만 쪽쪽 빨아먹는 사람들에게 악용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군대라는 체제는 나와 정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사람이며, 개선과 비판에 대해 더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곳으로 가야 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이 외에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해 보라면, 책을 많이 읽고 자기계발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에, 여유가 있으면 최대한 공부를 해 두고 책을 읽으려고 했다. 일주일에 한 권씩 꾸준히 책을 읽었고, 갑자기 상어에 관심이 생겨서 대멸종과 상어의 진화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블로그에 글로 기록하면 좋을 것 같아 열심히 자료조사를 해서 글을 썼으나, 하나의 글에 품을 너무 많이 들인 탓인지, 글 하나 쓰고는 그 블로그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너는 여기 와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냐’하는 주위의 경이 섞인 눈빛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운동도 꽤 열심히 했다. 군대에서는 왜인지 다들 운동을 하는 분위기였고, 운동 잘 하는 사람들이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고 했다. 덕분에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스쿼트 자세를 공짜로 교정받을 수 있었다. 알려주는 고인물들도 선후임을 가리지 않고 뉴비가 커가는 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보면서 가르쳐 주어 윈윈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당연히 나를 가르쳐 준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덕분에 팔굽혀펴기 개수가 말도 안 되게 늘었고, 그 당시가 성인이 된 후 지금까지 중 가장 가벼운 몸을 지닌 시기였다. 나름 식단도 조절했으니, 진심으로 다이어트를 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내 마인드는 ‘강강약약’. 내 기준 ‘강’은 간부들과 선임, ‘약’은 후임들이었다. 그래서 뭔가 끌려온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나서서 말하고, 후임들에게는 최대한 잘 해 주려고 했다. 후임들은 내가 뭔가 부당한 것을 시키거나 나 때문에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나 나름대로 최대한의 유도리와 유함을 발휘하려고 했다. 덕분에 그 안에서 다시 부조리가 생겨났다는 것을 듣고 깊은 현타를 느끼긴 했다. 이게 참 힘들었던 게, 모두 끌려와 있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익을 생각하라고 요구할 수 없었고,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체제를 악용하는 사람이 눈에 계속 밟혔다. 그런 것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편한 분위기에서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하는 후임들을 보면서, 나에게 도움을 받고 고맙다고 하는 후임들을 보면서 견뎠다. 뭐 이런 식으로 나서서 하는 것도 사실 몸이 안 힘드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탱크를 닦고 조립하며 밖에서 구르고 온 동기들은 생활관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고, 내가 그런 입장이었다면 강강약약이고 뭐고 그냥 까라는 대로 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되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긴 하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군대를 다시 간다고 해도 거의 똑같이 살 것 같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생각한 군생활이었지만, 돌아보니 이때도 꽤 열심히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 년 반을 맞지 않는 환경에서 견디면서, 계속해서 자기계발하고 나에 대해 고민했던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늘도 또다시 나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써내려간, 나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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