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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28. 2019

[영화 추천] 쓰리 빌보드(2017)

어미의 분노, 폭주하듯 달리는 기관차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은 상처뿐이다

[영화 추천] 쓰리 빌보드(2017)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딸을 잃은 어미의 분노, 폭주하듯 달리는 기관차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은 온통 상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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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맥도나(킬러들의 도시, 세븐  사이코패스)

개봉: 2018.03.15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밀드레드 역), 샘  록웰(딕슨 역)

개요: 범죄/드라마, 미국/영국,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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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해에 나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여자주인공 샐리 호킨스가 여우주연상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쓰리 빌보드>는 안 본 상태였었다. 그런데 아카데미 7개 영역에 노미네이터된 이 영화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이 나오고. 나머지는 감독상 등을 포함하여 <셰이프 오브 워터>가 수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샐리 호킨스를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그 배우의 어떤 점이 주요 요소가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그녀의 연기를 꼭 봐야지 하고 벼르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렇게 일년이 거의 다 지나서야 마침내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밀드레드 역할을 연기한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1957년생으로 60세 즈음에 이 작품을 연기했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배우를 염두해 두고(이 배우만 생각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가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강간 당하면서 죽어간)딸 아이의 처참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이후의 엄마로서의 분노와 증오, 아픔, 회한 등을 전사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노동계급의 모습을 보여주는 태도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쓰리 빌보드>의 중심 서사는 모두가 잊어버린 딸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메시지로 이목을 집중시켜  세상과 뜨겁게 사투를 벌이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그리고 이 세 개의 빌보드 광고판에 새겨진 문장은 엄마의 분노이며, 세상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직장에서나 외출시에는 무조건  위아래가 연결된 작업복을 착용하고 나온다. 투블럭으로 뒷머리는 반삭을 하고 나머지 머리는 닭꽁지처럼 야무지게 묶었다. 마치 투사(또는 전사)처럼  보이는 이미지이다. 웃음기가 전혀 없고 시종일관 화가 난 모습이며 생각이 확고하며 거침이 없다.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밀드레드라는 인물을 통해서,  상실감과 분노로 막다른 길에 놓인 상황에서도 계속 파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혼자 세상과의 전쟁을 선언한 엄마의 감성을 전한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딸을 잃은 엄마의 뜨거운 분노를 조율하는 음악과 함께 전달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 음악이 참 좋다. 마치 음악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오프닝에서 밀드레드가 운전을 하면서 도로를 지나갈 때, 클래식한 음악이 흐른다. 그런 잔잔한 선율이 오히려 싸늘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중간중간 컨추리송 같은 따뜻한 노래가 희망을 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딕슨 형사가 이어폰으로 듣는 노래들은 멜로디가  매우 익숙해서. 마치 같이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적한 도로에 을씨년스럽게 세워져 있던 오래되고 낡은  세 개의 대형 광고판. 하기스 브랜드처럼 보이는 광고에서 어린 아이의 이미지는 그 한적한 도로와 너무나 낡은 광고판에 어울리지 않아서 괴기스런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마치 그 광고판만 쳐다보고 있으면 공포 영화처럼 여겨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광고판에 나중에 새롭게 새겨지는, 주황색  바탕에 새겨진 세 개의 문장. (그 바탕의 색과 글씨가 마치 주홍글씨처럼 연상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내 딸이 강간 당하면서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경찰 서장 월러비?”

범인을 잡지  못한 딸의 살인 사건에 세상의 관심이 사라지자,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이렇게  세 줄의 도발적인 광고를 실어 메시지를 전한다.이런 메시지를 통해서 엄마는 딸을 잃은 아픔을 잊지 않으려 한다. 


광고가 세간의 주목을 끌며 마을의 존경 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와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믿을 수 없는 경찰로 낙인찍히고, 조용한 마을의 평화를 바라는 이웃 주민들은 경찰의 편에  서서 그녀와 맞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요지부동. 오히려 더 거침없이 행동하고 신념은 확고해진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하기만 한  엄마인가. 그녀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말에 대한 반성과 회한. 죽은 딸에 대한 미안함. 아주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다.  


내 울음이 터지고 만 대목이 있다. 엄마가 딸아이  방에서 회상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결국은 차를 내주지 않으니까) 내가 밤길을 가다가 강간당할거야", "그래 그렇게 걸어가다가 강간 당해라"  라며 딸과 말싸움을 했던 날. 그렇게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면서 결국은 소리없이 오열하고 마는 장면. 아, 이 어미는 어찌  살아갈꼬. 나도 소리없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대형 광고판 아래에 아침마다 화분을 두고 오는  엄마. 그곳은 딸 아이가 강간을 당하고 불에 타며 죽어갔던 장소. 그곳에 앉아서 넓고 깊은 아침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린 사슴이  한마리 나타난다. 마치 딸아이의 환생처럼. 그리고 그녀가 말을 건다. 마치 딸아이를 대하듯이. 그러다가 툭 농담을 던진다. 마치 현실 일상처럼  무심하게. "과자밖에 없어. 넌 먹다 죽을 거야" 라고. 아... 나는 왜 이 대목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는지.


감동적인 대목들이 많다. 특히 경찰서장 윌러비의  언행들에서 말이다. 그가 떠나기 마지막 날 두 딸에게 강가에서 낚시 놀이를 열렬하게 설명하던 모습. 자기가 떠난 후 남겨질 젊은 아내, 그리고  그의 죽음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될 밀드레드에게, 그리고 후배 경찰관 (늘 모자란 사람처럼, 주먹이 먼저 앞서는) 딕슨에게 남긴 세 개의 편지.  아, 이보다 더 배려심 넘치는 유서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상처, 아픔, 증오, 분노, 복수  등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한적하고 아름다운 푸른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금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러한 경관과는 다르게  엄마가 마주한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딸을 잃은 엄마는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고군분투가 (총소리  없이)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특이한 상황을 연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범인을 향한 분노와 범인을 잡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엄마와 함께 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결국은 다른 사람으로 성장 또는 변모(여기서 변모는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세상. 그래서 그 정의를 향한 몸짓과 투쟁의 끝은 외롭지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하고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몰입감을 느꼈다. 또한 엄마를 포함한 대개의 등장인물에게 연민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따뜻한  소리를 들었다. 


죽은 딸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고자 폭발적으로 분노를 뿜어내는 엄마 ‘밀드레드’를 통해서 소리없는 통곡을 들었으며. 그것은 총소리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세상에 오직 독불장군처럼 엄마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은 또 그렇게 그  엄마의 소리를 제대로 듣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을.



[영화 <쓰리 빌보드>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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