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찻잎향기 Aug 06. 2019

도서 리뷰 [여행의 이유]

소설가의 여행 이야기

도서 리뷰 [여행의 이유] 소설가의 여행 이야기 




간만에 책에 푹 빠졌다. 물론 8시간의 기차 여행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지만. 


책장이 잘 넘어갔다. 그리고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충분히 의미있고 예리했다. 




그러나 '나같은 사람'은 읽지 말았어야 했다. 


여기서 나같은 사람이란 - 


책(특히 소설)과 작가(특히 소설가)와 여행에 대한 로망(환상)이 있는 이들. 대개의 문장에 영화와 읽은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을 선망하는 이들. 여행을 책으로만, 에세이로만, TV로만 배운 이들. 그래서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성찰을 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은 읽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직접 여행 (특히 배낭여행)을 도발하고, 그런 배낭여행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는 어떤 대목을 배가 아파 미쳐 버릴 것 같은 부러움을 사고 있는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책(글)이었다. 




이 책에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 초등학교 시절, 아주 많이 전학 다니던 사연, 대학 시절 첫 중국 여행 등 - 소설가로서의 여행, 소설과 여행의 닮은 점 등이 아주 밀도있게 접목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같은 어줍짢은 일반인보다는 작가 지망생에게, 창작 프로그램에서 읽히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 각각의 9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칼럼이나 단편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제언을 하자면, 이 책에 인용된(또는 작가가 각주에서 언급한) 책과 영화 등을 따로 목록화하여 맨 뒷장에 한 면 정도 할애를 하면 좋겠다. 너무 좋은 책, 좋은 말, 좋은 영화 내용 등이 인용되어 있는데. 책장을 넘기고 나면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오십대 중반이 되면서, 망각 증세가 거의 초단위로 발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다음 개정판이 나온다면. 글에서 언급된 책, 영화, 칼럼 등을 따로 리스트로 제시해 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 특히 사무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아주 많이 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야말로 관광이 아닌 여행. 여행자로서의 삶, 떠돌이로서의 삶, 자유 여행 등에 대한 나의 로망이 은연 중에, 마치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처럼 비춰졌나 보다. 그러나 나는, 


여행도 관광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특히 자유여행은 단 한 번도 없다. 겨우 간 것이 애들 몇 번 데리고 패키지 관광을 한 게 전부이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다음엔 남편 눈치가 보여서. 다음엔 시간이 없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었지만. 결국은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서다. 




내게 여행의 이유는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이유와 거의 같다. 


일상에서의 탈출, 낯선 사람과 낯선 장소에서의 편안함, 특히 호텔 객실에 들어섰을 때의 안도감 등등. 김영하 작가의 말, 구체적인 단상들, 그 과정의 묘사들이 거의 나의 생각과 빙의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겼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여행과 여행을 통한 모든 경험이 글이 되고, 또한 글이 되기 위한 밑거름과 휴식이 될 수 있다만. 나같은 일반인은 그저 의무적인 간단한 메모와 피상적인 인상으로만 기억이 되고 만다. 




117쪽 -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그래서 나는 내 여행 또는 관광보다 다른 이가 기록한 언어, 또는 떠들어대는 말을 통해서 내 여행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일정하게 떠돌았고, 안식처가 생기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 이곳은 곧 떠날 곳이라는 생각을 저기저기 어디쯤 밑바닥에 숨겨두고 있다. 그래서 큰 욕심이 없다. 특히 장소, 공간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다. 




인생은 나그네길이 아니던가. 결국 또 떠나야만 하는. 그리고 천상병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소풍"이라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 '귀천' 중에서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여행에 대해 갈망하는 것일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안정적이며 잘 정착하고 사는 안주하며 편안하게 생활하는 인간처럼 보이는데. 나의 이중적인 면모는 그렇다. 어떤 이들에게는 여행자처럼 보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절대 위험한 여행 같은 것은 안 할 것처럼. 


인간은 떠돌이 유전자가 있다고. 걷고 뛰고 여행하는 호모 비아토르라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떠나고 싶어할까. 




요즘 같이 인터넷 세상이 발전하고 SNS가 모든 정보를 퍼뜨리고 있는 세상에 여행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 나는 여행 프로가 TV에 많아질 때부터 엄청난 불만을 표출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인구들이 자유 여행이든 패키지 관광이든 떠날 것이라고. 왜냐면 그런 프로들, 책들, 이야기들은 잠자고 있떤 호모 비아토드의 잠재적 여행 유전자를 자극하고 도발할 것임이 분명하거든. 엄청난 (여행)정보의 홍수를 의도치 않게 맞이하게 되는 일반인들(시청자들) - TV만 보더라도 여행 예능 프로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특히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은 지식인들의 여행 정보는 여행 유전 인자에 불을 집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그 이유는 이 책의 5번째 이야기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에서 너무나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여행자 스스로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하고. 여행자, 피디, 편집자 보다도 더 총체적으로 여행의 성찰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입장이 시청자가 되었을 때. 과연 그 시청자 중에 몇몇은 좀이 쑤시지 않겠는가.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겠는가. 




내가 한때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비난한 적이 있나. 전 국민 해외 여행(관광) 조장 홍보 프로그램이라고. 




그런데 이 책은 가장 수준 높고 지적인 - (자유, 배낭)여행 조장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저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학과 창작,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예리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여행과 소설 구성의 상관 창작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 권하고 싶다. 


그러나 나처럼 어떤 사유로든 여행을 못 떠나서 안달이 난, 그러나 욕망은 있는데 간절함이 부족하여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은 읽지 마라.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현재 안주하고 있는 자신의 삶과 그 여정이 의미가 없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탐독하지 마라. 탐독하면 나처럼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작가가 이 책을 쓰는 데 자신의 모든 여행 경험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아직 그는 끝나지 않은 여행자다. 그래서 또 어디론가 떠날 것이고. 또 그렇게 떠나 길 위에서, 또는 돌아와서, 여행의 경험과 소설의 만남으로 우리를 놀래킬 어떤 작품을 세상에 내 놓을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찾아 보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알폰소 링기스의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등.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오디세이아>,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 




그리고,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첫 표지를 장식하는 도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짧은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슷한 듯 같은 듯 다른 듯한 세 개의 도형 이미지. 이것은 단순한 디자인일까, 본문 내용과 관련이 있는 상징적인 디자인일까. 읽으면서 쓸데없이 궁금해졌다. 




이 리뷰는 예스24 파워문화블로그 활동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파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