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 허구 & 이야기
1.
내 딸아이 이름은 다팽이다.
딸 아이는 서울에서 5년 동안 혼자 원룸 생활을 했다.
그리고 우리 몰래 작년부터 1년 가까이 고양이를 키웠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 아이 이름은 다롱이.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다팽이와 헤어졌다.
강제로 딸 아이를 집으로 들어오게 했기 때문이다.
찬란했던 딸 아이의 독립 생활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롱이의 처량한 나그네 살이가 시작되었다.
2.
다롱이의 나그네살이는 내 핑크 후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유니클로에서 세일가로 싸게 구입한 후리티 (일명 개털티)를 그 아이가 매우 좋아했다.
내가 채 한 달도 못 입고 딸내미에게 양도했는데. 어느 날 다롱이가 꼭 그 안에서만 포옥 파묻혀서 잔다고 했다.
그 옷에서 다롱이는 자신의 엄마 냄새를 맡았는지 모르겠다. 눈도 채 뜨기도 전에 길에 버려졌던 그 아이는 계속 엄마 냄새만은 기억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핑크 개털 후드에서 엄마의 냄새를 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 딸내미 다팽이가 어린 날(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에 항상 젖병과 함께 물고 빨고 들고 다니던 멍멍이(인형의 이름) 털강아지 인형을 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다섯 살 즈음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멍멍이 인형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아이가 눈을 뜨고 있거나 잠자는 동안에 그것을 뺏기가 쉽지 않아서. 매번 아이가 없을 때 세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탈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아이가 그날따라 두어 시간 일찍 귀가할 줄 누가 알았으랴). 아이는 오자마자 멍멍이를 찾느라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다른 털 달린 인형을 주어도 막무가내. 평상시에 울음 끝도 짧고, 방긋방긋 잘 웃기만 하던 아이가. 아마도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목 놓아 울던 날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탁조에서 탈수가 덜된 멍멍이 인형을 꺼내 주었다. 물이 뚝뚝 흐르는. 그것을 보자마자 반갑게 웃더니 덥석 안아 들고 눈물을 뚝 그치는 아이의 모습이라니.
그래서 안다. 다롱이에게 저 핑크 털 달린 후드티가 얼마나 각별한 의미인가를. 가족애보다 더 찐한 어떤 감정이 교류되는 것임을.
그래서 다롱이가 딸아이 손을 떠나서 친구집으로 입양을 갈 때. 고양이 가방에 그 후드를 넣어 주었다.
그런데도 말이다. 입양한지 이틀인가 며칠인가 동안은 그 옷만을 물고 빨며 울어댈 줄이야.
전에 사랑을 주었던 주인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고양이인데도 말이다.
3.
고양이 다롱이가 다팽이와 헤어지고 나그네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오고 갈 데 없게 된 다롱이를 흔쾌히 맡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날개 없는 천사라 불릴 정도로 착한, 다팽이의 친구였다.
다팽이가 지난 가을부터 몇 달을 고민하고 집으로 복귀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다롱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그것을 선뜻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아버지가 반려동물을 기겁하는 상황에서 집으로 데려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타인에게 입양을 시킬 수도 없고.
길냥이를 거둘 때는 그마만한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 다팽이는 겨우 1년여 만에 자신이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엄청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친구가 나서 준 것이다.
‘다롱이를 잠깐 동안만 맡기는 것이다.’
아마도 다팽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다팽이의 다롱이에 대한 사랑은 보통 엄마들의 자식에 대한 첫정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울 갈 일 있으면 다롱이를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지고. 결국은 상사병 같은 상묘병에 시달리며 가끔씩 “다롱아~~ 다롱아~~” 하면서 괴로워했나 보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월 중순경이다. 다팽이가 서울 올라갈 때마다 다롱이를 데려온다는 사실을.
“한 번 보냈으면 정을 끊어야지. 왜 다시 만나고 그러냐.”
“...”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일이었으면 아예 데려 오지를 말았어야지.”
“...”
“그렇게 다른 집에 보냈는데 데려왔다 갔다 하면 그 애가 어디에다 정을 붙이고 살겠냐.”
“...”
“이제 다시 만나지 마라.”
그렇게 윽박지르기도 하고 경고도 하면서 딸아이의 상묘병을 얼랬다 달랬다 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3주 전에 일어났다.
서울에 있는 방이 나가게 되어서 남은 짐을 가져 와야 하기도 했고. 그래서 다팽이는 마지막으로 그 집에서 한 밤 자고 온다 했다.
불안했다. 혹시나.
“혹시 다롱이 데려오진 않을거지.”
“...응”
믿었다.
그런데 이틀이 되어도 딸 아이가 집에 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했다.
“빨리 안 오고 뭐해?”
“... 응, 갈게.”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오지를 않는다. 무슨 일 있나.
오후 6시가 넘어서 전화가 온다.
“엄마... 나... 전철인데... 잘 걸을 수가 없어... 엄마가 마중 나오면 안 될까. 짐이 좀 있는데...”
“무슨 일이야. 다쳤어? 넘어졌어?”
“아니야... 별일 아니야... 나중에 만나서 얘기할게...”
야야, 무슨 일이다냐. 이런 일이 통 없었는데.